'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주말 아침, 알람 소리보다 먼저 눈이 떠지는 건 순전히 몸에 밴 습관 때문이다. 현관문 앞에 놓인 축구 가방을 챙기며 무릎을 한두 번 굽혀본다. ‘아, 오늘은 좀 시큰거릴 것 같은데.’ 2026년, 서른이 된 나의 주말은 여전히 초록색 잔디 위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내 주말은 늘 축구장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같았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두 시간 넘게 운동장을 누벼도 숨 한 번 크게 몰아쉬면 그만이었다. 공만 잡으면 앞만 보고 내달렸고, 넘어져도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났다. 체력은 무한 동력 같았고, 열정은 온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제는 경기가 시작된 지 딱 한 시간만 지나도 무릎 안쪽에서 기분 나쁜 ‘시큰함’이 신호를 보낸다. 머리로는 저 공을 따라가야 한다고 소리치는데, 다리는 이미 파업을 선언한 상태.예전처럼 무작정 뛰다간 내일 아침 출근길이 재앙이 될 거라는 걸 몸이 먼저 눈치챈다.
재미있는 건, 체력이 빠진 자리를 ‘노련미’라는 녀석이 채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요즘 나는 운동장을 많이 뛰지 않는다. 대신 길목을 지킨다. 공이 올 곳을 미리 예측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낸다. 이른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다.
가끔 20대 초반의 젊은 팀과 경기를 할 때면 그 차이는 극명해진다. 지치지 않고 압박해오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빠른 발재간 앞에 신체적으로는 분명 뒤처진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그들이 패기로 덤벼들 때, 나는 십수 년간 쌓아온 경험으로 수비 라인을 조절하고 결정적인 패스 한 번으로 흐름을 끊는다. 젊은 피의 속도를 노련한 아저씨의 ‘눈치’로 대적하는 순간,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경기가 끝나고 벤치에 앉아 보호대를 풀 때면 밀려오는 피로감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운동장을 떠나지 못하는 건, 변해버린 내 몸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저씨가 된다는 건, 어쩌면 더 이상 제일 빨리 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대신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아는 사람. 운동장 위에서 배운 이 ‘짬’은 아마 내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꽤 괜찮은 가이드가 되어주지 않을까. 무릎은 조금 시큰거려도, 다음 주말 나는 또다시 축구화 끈을 꽉 조여 맬 것이다.
마음은 프리미어리그인데 몸은 조기축구회 회장님을 닮아가는 서른입니다. 하지만 덜 뛰고 더 많이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 믿고 싶네요.
여러분은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를 느낄 때, 자신만의 어떤 '노련미'로 대처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