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스승

'돌고 도는 유행, 끝이 없는 배움'

by 기록하는 엄작가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으면 어느새 내 주변엔 열 명도 넘는 '스승님'들이 모여든다. 사촌 형, 친척 누나들의 자녀들. 엊그제까지만 해도 기저귀를 차고 내 품에서 울던 녀석들이 이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즘 세대의 최첨단 문물을 전수해 주는 스승님이 되었다.


"삼촌, 이것도 몰라요? 요즘은 이게 유행인데!"


녀석들의 쩌렁쩌렁한 훈수 앞에 서른 살 남자의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는다.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부터, 도대체 무슨 재미인지 알 길 없는 게임의 룰, 그리고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신상 음식의 이름까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열공' 모드에 돌입한다.

도대체 배움에는 왜 끝이 없는 것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행을 따라가는 데 왜 이렇게 숨이 차는 것인가.


그런데 녀석들과 대화하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아이들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 든 아이템을 보는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거... 딱지 아냐?"

그렇다. 수십 년 전, 내가 동네 놀이터 흙바닥을 뒹굴며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내리치던 그 딱지가 다시금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캐릭터는 바뀌었지만, 상대방의 딱지를 뒤집기 위해 온 몸의 기를 모으는 그 비장한 표정만큼은 20여 년 전의 내 모습과 판박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나의 찬란했던 '딱지왕' 시절이 조카들의 손끝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요즘 유행을 배우다가도, 문득 내가 더 잘 아는 영역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삼촌이 말이야, 예전에 딱지 좀 쳤거든"이라며 슬며시 소매를 걷어붙이는 순간, 나는 조카들에게 배우는 제자에서 인생의 선배이자 든든한 아군으로 거듭난다.


아이돌 이름은 자꾸 까먹고, 신조어는 여전히 외계어처럼 들리지만, 딱지 하나로 열 살 조카와 서른 살 삼촌이 하나가 되는 광경. 아저씨가 된다는 건 어쩌면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의 소중함과 새것의 신선함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다리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조카들이 알려주는 유행에 땀을 뻘뻘 흘리지만, 녀석들이 건네준 딱지 한 장에 마음만은 다시 흙바닥을 누비던 그때로 돌아간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이런 배움이라면 꽤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조카들 앞에서 작아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죠? 아이돌 멤버 이름을 외우는 건 공부보다 어렵지만, 다시 유행하는 딱지를 보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칩니다.

여러분도 조카나 아이들에게 '역으로' 배우게 된 의외의 유행이 있으신가요?



이전 02화어느 날 아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