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이라는 고지서'
카톡 알림음과 함께 날아온 모바일 청첩장. 예전 같으면 "오, 이놈 드디어 가는구나!" 하는 설렘이 앞섰을 텐데, 이제는 반사적으로 캘린더를 켜 스케줄을 확인하고 이번 달 카드값 명세서를 훑는다. 청첩장이 반가운 소식보다는 기한이 정해진 고지서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내 몸 어디선가 스쳐 지나가는 ‘아저씨’의 향기를 맡는다.
결혼식 당일 아침, 오랜만에 꺼내 입은 정장 바지가 허벅지에서 팽팽하게 걸린다.
"세탁소에서 옷을 잘못 드라이했나?"라는 구차한 핑계를 속으로 삼켜보지만, 거울 속에는 작년보다 한층
너그러워진(?) 인격만큼이나 툭 튀어나온 뱃살을 가진 남자가 서 있다. 억지로 단추를 채우며 결심한다.
오늘 연회장에서는 딱 한 접시만 먹겠노라고.
식장에 도착해 마주한 친구들의 풍경은 더 생소하다.
한때는 예쁜 핸드백을 메고 유행하는 화장품 이야기를 하던 동창들은 이제 기저귀와 젖병이 가득 담긴
커다란 에코백을 메고 식장 구석에서 아이를 달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 노선을 공유하며 모이던 친구들은 어느덧 하나둘씩 차키를 손에 쥐고 나타난다. 그들의 차들을 보며, 여전히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나는 어딘가 뒤처진 게 아닐까 하는 묘한 부채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식탁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이미 예전과 다르다. "누구 예쁜 애 안 오냐?"는 철없는 질문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요즘 주식 어떠냐", "그 동네 전세가는 좀 내렸냐", "너는 비타민 뭐 먹냐"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존에 직결된 이야기들이다. 뷔페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보다 서로의 건강검진 결과를 공유하며 눈이 반짝이는 우리를 보며, 나는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확신한다.
예식의 하이라이트인 축가와 행진이 이어지지만, 감동에 젖어들 새도 없이 시계로 눈이 간다. '지금 나가야 연회장 줄이 덜 길 텐데.' 주인공의 행복만큼이나 내 접시 위의 갈비탕 온도가 중요해진 나. 감성보다는 당 수치와 효율이 우선시 되는 모습에서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예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딱딱한 구두 때문에 발꿈치는 까칠해졌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야, 뒤풀이 가야지!"라고 떼쓰는 친구도, 붙잡는 사람도 없다. 다들 각자의 가정을 지키러, 혹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서둘러 흩어진다. 멀어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어쩌면 아저씨가 된다는 건,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타인의 기쁨에 들러리가 되어주고, 소란스러운 축하 뒤에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올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욱신거리는 발뒤꿈치의 통증만큼, 나는 딱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예전엔 밤새 이어지던 뒤풀이가 당연했는데, 이제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의 정적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네요.
여러분은 언제 자신이 아저씨(혹은 어른)가 되었다고 느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