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야 할 곳을 잊은 채 숫자만 세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노라면
내려야 할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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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손가락으로 세고 또 세고
넷, 다섯, 여섯
누군가의 시선이 등에 꽂힌다
일곱, 여덟, 아홉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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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벌써 지나쳤다
어릴 적 지하철은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편리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라는 숫자가 붙기 시작하면서, 열차 안은 거대한 시험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하나, 둘, 셋'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10대와 20대.
'넷, 다섯, 여섯'을 지나며 등 뒤로 꽂히는 사회의 시선들.
"너는 지금 어디쯤 왔니?", "남들 내릴 때 왜 안 내리니?"
무언의 압박에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릅니다.
남들이 말하는 '정답'이라는 정거장에 내리려 손가락을 꼽으며 긴장하다가,
정작 내가 내리고 싶었던 곳은 어디였는지 잊어버리곤 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지만, 열차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지하철 안에서,
나이라는 숫자에 쫓기며 길을 잃은 미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이 내린 곳은, 정말 당신이 원하던 역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