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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원시안 遠視眼

— 멀리 보기

by 아이언캐슬

멀리 보기 연습을 한다
섬모체근의 힘을 빼는 기술
수정체를 최대한 펼치면 가시거리보다 멀리 볼 수 있다
섬모체 근육 힘을 빼야 한다
무엇이든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떤 일은 힘 빼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힘쓰는 것보다 쉽지가 않다


수정체와 근육 사이에 감정이 섞여 들면
그만큼 미세한 갈등이 흐른다
근육은 언젠가는 수정체를 놓아주겠지만 미련은 남긴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사랑하는 것을 언젠가는 놓아주어야 하는 모순
섬모체 근육은 수정체를 조금씩 풀어주고 있다
힘을 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허공을 휘저어 길을 터면
초점 거리 넘어 아득한 곳까지 시야가 만들어지고
그 길 끄트머리 소실점이 수정체를 통과할 때
마치 블랙홀처럼 차가워질지도 모른다
사랑과 미련의 중간쯤에서 시야는 식어버려 소멸하는 점


멀리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아간다는 것이다
멀리 보는 것은 지나온 길을 보지 않아도 된다
허공에 다리를 펴고 달려가는 철새가 도착지를 미리 보듯
달려온 거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실점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로 날아가는

새벽녘 창 속에서 완벽한 줄을 그으며 창틀을 벗어나듯
차가운 이별의 흉터를 봉합하는
그것은 사랑이라고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도
바람의 결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때 곁을 스치던 온기가
남은 잔상을 따라 무늬처럼 새겨질 것이다

멀리 본다는 것은 단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서도 이어지는 빛을 믿는 것이다
손을 놓아도 이어지는 광선처럼
우리는 서로의 시야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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