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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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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Mar 06. 2024

선비화禪扉花*의 이유

바람과 구름의 뿌리가 있는 곳

청려장靑藜杖이 바람의 깊이를 가늠한다

봉황산 자락 널브러진 그루터기 나무 하얀 속살에서

율법을 찾는 억겁의 시간은 수평선을 유지한다

슬픔과 기쁨이 대칭으로 조율하고

헤어짐과 만남은 이유 있는 목적에 중독되어 있다    

 

나무도 목적을 가지고 자란다

쳐다보면 바스러지는 투명한 잎맥

산의 깊이가 변할 때마다 헤부치는 바람

꽃의 정분은 조사당祖師堂 외벽을 회칠한다

지붕의 기왓장만큼 겹겹이 인연이 쌓이면

포개진 인연 속으로 꽃은 또 다른 인연을 덧칠한다   

  

꽃잎을 건들면

천년 산사의 목어가 범종 소리를 타고

산을 날아다니며 바람의 깊이를 잰다

바람과 구름의 뿌리에서 전설이 깨어난다

전설은 소용돌이치는 석탑처럼

검지의 지문 나선을 타고 선회하다가

시냅스에 도달하면 수십 번이나

곤두박질하면서 몸속 구석구석으로 맺힌다  

   

이파리를 만지면 내가 나에게 달되고

구름 사이를 비집햇살투시처럼

이내 감춰질 고통도 참아내며

심장을 탈출하는 번뇌가 뿜어져 나온다

지문은 힘을 잃고 직선으로 풀려

잎맥을 따라 부지불식간에 뿌리까지 빨려 들어간다

땅속 깊은 곳에서 떠 있는 바위를 만난다     


된비알 조사당 가는 길 뿌다구니를 디딜 때마다

1300년 넘게 묵은 조사祖師의 붉은 해탈이 울컥 배어 나온다

처마 밑 선비화에서 선묘善妙**의 향기가 난다


*부석사 조사당에 있는 골담초

**부석사 건립설화에 등장하는 여인, 부석사에 선묘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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