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와 담판

by 아이언캐슬

어렵게 B 교수와의 면담이 성사되었다. 그는 물론 나보다는 후학이지만,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췌장암의 명의 중 한 명이었다. 워낙에 바쁜 분이라 미리 K의 부인이 상담 예약을 해두었지만, 10분 정도의 면담이 허락되었다. K의 부인 그리고 그의 아들과 함께 B 교수와 상담이 시작되었다. 가족이 아닌 친구가 보호자로 찾아온 것이 약간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명함을 건네주자 그제야, 교수는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상담을 이어나갔다. K의 그간 진료 기록, 치료 내역과 영상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이미 간의 2/3 이상에 전이가 되었고, 더 이상의 약물치료는 간 손상을 가속하는 것 이외에 득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임상시험 중인 약물까지 3차례 사용하였었다. 우리가 미리 교수님께 부탁드리고자 한 약물과 유사한 것이었다. K는 그동안 진료 상황을 나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단지 치료를 잘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만 믿고 자세히 챙겨보지 못했던 미련한 나에게 화가 났다. ‘환자는 떠날 준비를 다 했는데, 아직 가족과 주변에서 보낼 준비를 못 한 것 같습니다.’ 담당 교수를 설득하러 갔다가 오히려 그에게 설득을 당한 꼴이었다. 환자가 과연 자발적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을까?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을 아닐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더 해보기를 원하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교수는 지금 간기능이 약간 회복이 된다면 약물 치료를 추가로 해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영상자료나 혈액검사 소견으로 보아 쉽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 K는 다시 입원하여 간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K는 가족들을 물리고 잠시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자신도 어느 정도 마지막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지를 하고 있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자신이 어떠한 상황이 될지, 너무 힘들게 마감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생명 연명치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어머니가 임종하실 때의 상황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연명치료가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급성기 질환이고 치유 가능한 질환의 경우에는 연명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것, 만성 질환인 경우 치유가 어려운 경우에는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고통만 줄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끼리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어차피 선택을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본인과 가족들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연하였다.


K는 이 병원이 편안하기 때문에 마지막을 이 병원에서 보냈으면 한다는 뜻을 비추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계속 입원을 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집으로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만 해 주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의 상황이 쉽지만은 않으며, 모든 치료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결국 K는 황달이 더 심해지고, 간기능도 더 나빠져 약물치료를 더는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퇴원을 해서 집으로 내려왔다. 며칠 동안 병원에서 지내면서 그도 다시 이 병원으로 오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집에 와 있는 동안 삶의 각질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나는 마지막 그의 가는 길에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그동안 진중하지 못한 나의 의료 상담이 그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고, 지금도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였다. 다만 한 달의 휴직 중이라 시간이 자유롭고 다른 친구들보다는 지역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나로서는,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K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이제 운전을 할 수 없는 그를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에게 데리고 가는 일이었다.


서서히 시계를 끄려고 하는 그는 이전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황달이 진행되고, 그 탄탄하던 근육이 점차 얇아져 갔다. K는 마지막까지도 사리 분별을 잘하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가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을 만들지 않으려 했음을 알았다. 어떤 친구는 자기는 보고 싶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음을 은근히 표현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그런 친구들은 이미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준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가까이하여 피해를 볼까 걱정했던 것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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