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평화로운(?) 동행

by 아이언캐슬

동행


잘 걷고 있나요

함께 하는 자드락길은 어둡지 않아요

샐녘

햇살이 아직은 잠에서 뒤척이더라도

잠시도 놓지 않은 손에

맞잡은 손이 밝아지면

길에는 아스라이 동이 트고

양볼은 아침노을처럼 붉어져요




지난달 여느 모임 때와 마찬가지로 운동을 위해 4인방이 모였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고질적인 양측 팔과 손의 관절염으로 나는 모임에만 참석하고 골프는 함께 하지는 못했다. 40여 년을 같은 반복적인 일상들이 오른쪽 어깨를 한동안 괴롭히더니, 이제 왼쪽 어깨까지 염증을 만들었다. 나의 주치의는 휴식이 최선의 치료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의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너무나 주관적인 생각인 것임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함을 내 일의 무게에 핑계를 달고 있었던 비겁함이다.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하던 일을 쉽사리 중단하기는 어렵다.


운동을 마친 후 저녁 자리에서 K는 ‘이제 힘이 빠지니, 오늘 유난히 공이 잘 맞았다.’라고 너스레를 떨더니, 오늘이 마지막 골프라운딩이 될 것 같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하였다. 항암 치료를 그만하기로 하였단다. 담당의가 약물을 여러 가지로 해 보았으나, 이제 더는 약물치료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K는 선뜻 동의하고 말았다. 그도 더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암표지 수치, 몸 상태와 치료 방법들을 상의한 터라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로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네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지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그때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던 너의 불씨가 이렇게 버텨냈구나.'


그동안 친구랍시고 곁에서 소극적으로 참관만 하였던 나의 죄책감에 화가 났을까, 무엇인가를 친구에게 적극적으로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저녁에 아픈 친구에게 화를 내었다. 왜 예전의 강인한 너의 모습을 버리고, 이리도 쉽사리 포기하느냐고....



서울로 올라가는 KTX 열차에 올랐다. 혹시라도 있을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서 그나마 내가 담당 교수와 상담을 해 주었으면 하는 가족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물론 K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었겠지만,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평소라면 남에게 불편을 주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마침 한 달의 휴직계를 낸 터라 이전과는 다르게 시간이 좀 더 자유로운 상황이었음을 알고, 내게 K와 담당 교수를 다시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먼저 K에게 아직은 임상시험 단계이지만, 치료 가능한 약물들에 대해서 문헌 자료를 보여 주며 설득을 했다. "어차피 누구나 다 죽음을 임하게 되어있지 않느냐. 출생에서 죽음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는 단지 얼마나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느냐만 다르지 않느냐. 천천히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빠르게 가는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죽음을 경험할 수도 없고, 경험해 보지도 못한 내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곤 이것밖에 없었다.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고 지금까지 힘든 항암 치료를 잘하기 위해 식이 조절, 체력관리를 너무나 강박적으로 완벽하게 해 온 친구의 일상 이야기며, 4년 동안의 항암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달 일반인처럼 운동한 이야기, 그리고 미리 그와 그의 가족들과 상의한 새로운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라도 가능하면 치료해 주기를 부탁해 보리라. 암과의 평화로운 동행을 좀 더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리라.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항암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