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역모逆謀다
서슬 퍼런 칼날을 숨기고도
헤픈 웃음으로 게글을 부린다
마음을 갉아먹는 세포들의 반란
한 줌의 속살과
한 바가지의 피를 내주고도
타협이 되지 않는다
수산시장에서 만난 비릿한 바다 냄새처럼
두 번 째도 세 번 째도
수십 번에도 익숙지 않은 관습
우후죽순
소란을 떨어대니
감당하기 벅찬 교섭이다
뒷동산 기슭에는
자주보아도
순탄하지 않은
마타리로 변장하는 뚜깔꽃의 노란 비웃음
한줄기 햇살만 남은
테이블에는
바다 건너에서 온
희망으로 잘 버무린
협상을 얹어본다
2023.07.07
K는 지금 4년 동안 항암 투쟁 중이다.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체력관리와 식이 조절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잘 지킨 그는 처음에 6 개월 남았다고 했던 제한된 시계를 4년이 지난 아직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이미 3번의 수술과 60번이 넘는 항암 치료 과정을 잘 이겨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잘 버텨내고 있는 그가 안타깝다기보다는 오히려 존경스럽다. 처음 수술을 마치고 나온 그에게 빨리 일어나서 다음 달부터 골프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집을 잘 굽히지 않는 편인데, 나와 O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듣는 편이었다. 그러마고 그도 약속했다. 어쩌면 수술을 마친 직후에 그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제안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4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골프를 하고 있다.
팀을 맞추기 위해 K를 잘 따르는 후배 S가 동참하기로 했다. S도 K에 버금가는 마당발이라서 그런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예약을 쉽게 척척 해냈다. 아주 무더운 여름이거나, 살에 애는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매달 1박 2일 회동을 했다. 천년 고찰인 포항의 보경사 일주문과는 5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펜션을 주로 고정숙소로 잡아 운동 전날에는 보경사 마당을 내 집 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펜션도 독채인 데다 평일이라 가격이 50% 이상 할인되어 가성비가 좋았다. 모임 전날에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소풍 전날처럼 가슴이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K는 평소에도 매일 2 만보씩 걷는다고 했다. 운동도 나보다 더 잘하니 가끔은 그가 항암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처음 그가 암진단을 받고 시한부의 삶을 명 받았을 때는 우리들 사이에 암, 죽음 등의 이야기는 터부시 되었다. 하지만 원래 명 받았던 6개월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고, 1 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그가 먼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서서히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도 그에게 남겨진 삶과 죽음의 시간을 저울질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삶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가고 있는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에 도달할 것이다. K는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 했다.
'죽어볼 수도 없고 죽어본 적도 없는 나 자신과...' 독일 작가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이란 책 소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한 경험담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직업상 많은 죽음의 현장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경험해 볼 수도, 해 보지도 못한 것이다. 십 년 전에 어머니가 죽음에 도달했을 때, 몇 번의 심폐소생술을 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 소생술에서 깨어나신 어머니는 '야야! 힘들게 거의 다 갔는데, 다시 되돌려놨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에게 그냥 남은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하신 말씀인지, 실제로 경험하신 내용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죽음까지 가는 길이 단지 편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편안한 죽음이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