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

by 아이언캐슬

4년 전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그는 별말 없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나마 아직도 자주 만나며 마음을 쉽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라고는 이사 간 O와 내가 유일하다고 새삼스레 말했다. 이야기하는 그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좁아 보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몇 년 전,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 은퇴한 O는 자칭 전업투자가라고 했다. 공학박사 출신답게 인터넷 정보 분석에는 거의 달인에 가까웠다. 며칠을 이리저리 자료를 분석하고 조합하여 제법 괜찮은 주식 매매 데이터를 공개했다. 제법 괜찮다는 의미는 우리에게도 제법 괜찮은 수익을 안겨주는 데이터라는 뜻이다. 그는 매달 부인에게 1박 2일 휴가를 내어주곤(본인이 휴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 휴가를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포항으로 내려왔다. 천안에서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아직은 마땅찮다고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기동창인 셋은 제2의 고향인 포항에서 운동도 함께하고, 쓴 소주를 한 잔씩 나누며 어릴 적 골목에서 숨바꼭질, 치기 놀이를 했던 개구쟁이 적 이야기, 학창 시절의 이야기로 스트레스를 씻어내곤 했다. 적어도 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나는 편이었다. 내가 아직은 백수가 되지 못하고 일을 하는 상황이라, 이들보다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최근에는 주 4일 근무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생겨, K와는 적어도 1~2주에 한 번은 만나는 편이었다.

K가 내민 서류는 췌장 꼬리 부분에 자그마한 혹이 생겼다는 검진 초음파의 소견이었다. 적잖게 놀란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비교적 차분한 표정이었고, 며칠 전에 검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며칠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하였던 모양이다. 내가 신경을 쓸까 봐 먼저 이야기를 못 했다며, 마침 조카사위가 Y-대학병원에 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 그곳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고 통보하였다. 물론 전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한 의사 친구인 나에게 먼저 상의를 하지 않은 것에 약간 섭섭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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