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 에필로그

남은 자를 위한 배려

by 아이언캐슬

이번 달 모임으로 단양으로의 2박 3일의 여행을 제안했다. 평소에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던 K도 단양은 어릴 적에 가 본 기억이 있다고 가고 싶어 했다. K에게 그곳의 노을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기는 내가 이제껏 본 저녁노을 중에 가장 가슴을 벅차게 한 장소 중 한 곳이다. 특히 무더위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초가을날이면 더욱 좋다, 해발 600m에 자리 잡은 카페의 마당 가장자리에 서면, 도담삼봉에서 시작된 거대한 U-자의 남한강이 두 팔로 부드럽게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풍광이 발아래에서 홀연히 나타나며, 바로 곁에는 공중 부양을 꿈꾸는 패러 글라이더들의 비행이 마치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구절초꽃처럼 날아다닌다.


잠시 후, 하늘과 남한강이 맞닿은 서쪽 하늘 끝자락이 은근하게 달아오르면 다양한 색채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벌꿀보다 부드러운 황금빛을 띠는가 싶더니, 서서히 붉어지고 심지어는 보랏빛으로 익어갈 즈음이면 어느 틈엔가 옆에 자리를 잡고 나와 나란히 노을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는 쑥부쟁이들이 앉아 있다. 늘 그렇듯이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순간에도 온 힘을 기울이어 강렬한 붉은 피를 토해내는 노을은 차마 경이롭기까지 하다.


혹시라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족들에게서 빼앗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기도 하여 K의 아들에게 동행할 것을 청했다. 아직 총각인 K의 아들은 당연히 휴가를 내어 가겠다고 하였으나, K는 한사코 아들의 동행을 거부했다. 아들은 자기 일이 있으니 자신 때문에 일에 방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들도 동행하고는 싶었으나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의 유난히 단단했던 근육은 이제 인대만 남아있는 듯, 몇 발자국도 내디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지막까지 강인했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며, 곁에는 우리가 늘 함께 있다며, 일종의 그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걷게 하였다. 그는 열 발자국 정도 걷는 흉내를 내고는 힘들어하며 눈치를 보았다. 잠시만 걸어도 어깨와 등의 근육에 경련이 와서 걷기 힘들다는 K는 억지로 마지막 발자국을 남은 이들을 위해 내디뎠던 것 같았다. 결국은 우리가 K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남은 이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던 것이다.


그날 저녁노을은 유난히도 오랫동안 그 붉은빛을 잃지 않았고, K의 시계는 점차 미라가 되고 있었다.




이상으로 저녁노을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부끄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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