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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Jan 28. 2021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어제 퇴근하여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들어가니 입구 쪽 좋은 자리가 한 칸 비어있었던지 누군가 막 주차를 하고 있다.

나는 빈 공간을 찾아 한참을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계단 쪽으로 나오는데 좀 전에 주차를 했는지 그곳에서 가방을 들고 나오는 여인이 힐끗 내 쪽을 쳐다보며 느릿하게 걷는다. 마스크를 써서 확인이 안 됐지만 아마 아래층 옆집 여자로 보였다. 천천히 걷는 그녀 뒤에서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나는 조바심이 나서 안달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단을 그녀 뒤에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좁아서. 그런데다 그녀 앞에는 또 다른 부부가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계간 끝 넓은 공간에서는 그녀를 뒤로 두고 앞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인사를 않고 모른 척하며.

그녀와는 평소 인사 정도를 하고 지낸다. 언젠가 내 큰아들이 교직생활을 하다 군대에 갔다가 군복을 입고 휴가를 나왔을 때 그녀는 내 아들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며

'어, 그랬어, 나보다 어린가 보네. 아들이 이제 군대에 간 것을 보면.'

하는 무언의 말을 내게 웃음으로 걸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 졸업을 하고 임용고시 합격하여 학교에 1년 다니다 군대에 갔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할 수 없어 말았다. 내 아이가 나이 먹어 군대에 갔음을 알려 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녀의 자식들을 보면 우리보다는 더 늦었다. 물론 그녀가 시집을 늦게 갔거나 늦도록 아이가 안 생겨서라면 몰라도 우리보다는 나이가 어릴 것으로 보였지만 뭐~ 달리 나이를 물을 수도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자기보다 어리게 보는지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가끔 있었다. 정말 나이를 알 수 없어 만나면 만나는 대로 먼저 인사를 했다. 내 인사에 고개를 끄덕여 받는 것이 못내 화를 돋우기도 했지만 이웃사촌이라는데 참았다.


어제는 그간 쌓인 매듭이 있어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그 부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얼른 승차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우체통으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먼저 탄 부부 중 남자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닫으려다 그녀를 발견하고 다시 여는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아주 느긋함의 대명사인 양 천천히 엘리베이터로 스며 들어왔다. 난 별수 없이 그녀를 향해 먼저

"안녕하세요?"

를 외쳤지만 웅얼거리는 투로 고개만 까딱 받더니 우체통에서 가져온 종이만 쳐다본다. 속으로

'올라가는 층수를 눌으라 알려줄까? 말까? 아니면 내가 눌러줄까?'

고민을 하다가 과잉 친절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늦게 들어온 주제에 인사도 그렇고 또 자기 가는 층수도 안 눌으니 한 번쯤 고생을 해야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하고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내릴 층을 지나 드디어 '띵동'과 함께 내가 내릴 곳이다. 그녀 뒤에 있다 앞으로 나서며 미친 척

"어, 안 눌렀나 보네요."

하고 집으로 후다닥 뛰어들어와 먼저 퇴근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남편 왈

"그런 사람은 눌러 줄 필요 없어.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하며 내 처신이 옳았다고 추켜올린다. 하하~

과연 내가 잘한 일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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