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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Oct 27. 2021

실내화 사건

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제 엄마의 친구와 자식 이야기를 하다 네 이야기를 해줬더니 놀라더라. 장가간 아들이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해 줘서 장가간 것 같지 않고 한 집에 사는 것 같다는 내 말에 공감을 하고 효자 아들이라 칭찬하더라.

나도 참 고맙게 생각한다. 전화를 하는 것이 무척 힘들 것으로 여겨 그만해도 되니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렴. 사실은 네 전화가 나는 참 좋다. 출근길에 하는 짧은 통화이지만 네 소식뿐 아니라 제자들 이야기, 동 학년 선생님들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거든.  오늘은 너에게 부탁을 했다. 블로그에 네가 해 준 이야기 올릴 것이라서 사진이 필요하다고 사진을 부탁했더니 역시나 도착하자마자 보내와서 깜짝 놀랐다. 너의 신속함에.


얼마 전에 네가 전화를 걸어와 난감하다고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나의 의견을 물었을 때 나도 황당하기는 했다. 너는 아는 사실이지만 여기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네 반 아이 중에 말을 안 듣고 조금 부잡스러운 아이가 급식을 먹고 교실로 가던 중에 일이 벌어졌다지.

그 녀석은 앞에 가는 아이의 실내화를 밟아 찢어버렸다고 했다. 너도 대처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라 해서 나는 네 돈으로 실내화를 사 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너는 나쁜 선례가 만들어져서 안 된다고 했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더라. 휴대전화도 실수로 떨어뜨려 부서지면 선생인 네가 사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먼저 실내화가 찢어진 아이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고 그 부모의 말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럼 그쪽 부모가 화가 나서 사내라고 하면 찢게 만든 학부모한테 전화를 해서 사 주도록 하면 되고 착한 부모라면 분명 아이들 실수이니 안 사 줘도 된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 실내화 찢어진 아이의 부모님은 착해서인지 너를 배려해서인지 괜찮다며 집에 또 하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안심이 되더라. 하지만 찢게 만든 녀석의 부모에게는 말을 해서 차후에 조심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라고 나는 조언을 했다. 그렇게 일단락 문제가 해결이 되어 다행이었다.


어제 출근길에 네 이야기를 듣고 나는 웃음이 나오고 그 녀석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친구 실내화를 찢어먹더니 이제 선생님의 실내화까지 찢어먹고 반성은커녕 오히려 다른 이유를 댔다는 말에.

네가 그 아이에게

  "실수로 선생님 신발을 찢었으면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냐?"

했을 때도 계속 남 탓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길래 아이가 조금 불성실하거나 장난기가 심한 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네가 보내준 실내화 사진을 보고 웃었다. 그 아이 탓도 있지만 네 실내화가 엄청 낡았더라. 몇 년을 신었는지 모르지만 너 혹시 첫 발령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은 것은 아니겠지?


이번 기회에 새로운 슬리퍼를 구하거라. 오히려 그 아이에게 감사해야겠다. 안 그랬으면 계속 신었을 것 아니냐.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은 네가 어려서 쓴 말이다. 그러니 아끼지 말고 새로 사거라. 열심히 돈 모아서 뭐 하려고 그러니?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네가 선생으로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은 쓰거라.

자린고비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조금 후에 네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는 빵 터졌다. 사실 사진으로 올리면서도 조금 쪽이 팔린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까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내 소신으로 올려본다.

하하하~

선생이라는 네가 신은 양말이 정령 맞더냐?

저 정도로 구멍이 날 상태로 신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고, 어이가 없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물론 네 발에는 가시가 있는지 장가가기 전에도 새 양말이 금방 구멍이 났다. 그럼 나는 아까워서 새 양말은 늘 기워줬다. 지금 네가 찍어 보낸 양말은 오래 신은 듯도 하다. 너의 발에 가시가 달렸다기보다는 오래 신었다는 소리다. 그러니 그만 버려라.

  "이것은 꿰매 신을까요?"

묻는 네가 어이없다.


문득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분은 젊은 총각이었는데 엄지발가락 양말에 구멍이 난 줄 모르고 신고 와서 우리 여학생들이 어찌나 웃었는지. 그날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에 수업을 중단한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고 나중에는 얼굴이 벌게져 수업을 한참 못했던 생각이 난다.


넌 장가도 갔는데 그렇게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면 네 아내가 욕을 먹는다. 아내 체면도 있으니 제발 양말은 좋은 것으로 신어라.

아끼지 말고 살아라. 아껴서 부자 될 수도 있지만 너 편하게 살기만 바란다. 절약하고 아끼는 것은 이 엄마 하나로 족하다. 너만큼은 좀 넉넉하게, 풍부하게, 품위 유지하고 살아라. 그러라고 엄마가 네 빚의 얼마도 탕감을 해줬지 않느냐.

사랑하는 아들!

엄마는 네가 아끼고 절약하고 사는 것이 싫다. 궁상맞아서이기도 하고 내 삶을 닮을까 봐서다. 물론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빚내지 않고 내 집에서 편하게 살고는 있지만 너까지 그럴 필요 없다. 너희들을 위해서 엄마가 그리 살았다. 이제 너희는 풍족한 가운데 편히 살 거라.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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