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신호탄을 가장 먼저 올리는 곳은 봄한정 딸기 음료와 딸기를 올린 디저트를 선보이는 카페와 빵집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빵집, 개인 업장에서 앞다투어 봄 한정 메뉴를 내놓는다. 스테디이자 베스트인 딸기라떼와 생크림딸기 케이크를 필두로 각자 개성을 담은 메뉴를 선보인다. 제일 좋아하는 카페의 딸기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조금 이른 봄을 느낀다.
카페와 빵집의 딸기 디저트가 이른 봄을,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봄의 절정과 끝을 함께하는 음식이 있다. 빵과 떡, 과자 등을 망라한 지독한 탄수화물 중독자인 나의 봄맞이 떡은 쑥버무리다. 어느덧 볕이 따스해지고 한껏 봄이 왔구나 싶을 때 즈음에는 단골 떡집 SNS를 기웃거리며 쑥버무리 주문이 시작되었는지 살핀다.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빵이나 쿠키처럼 봄의 시즈널 주인공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동네 떡집에서 찾기 쉽지 않을뿐더러 맛있는 가게는 더욱 없다. 어렵게 찾아낸 맛집에서 매년 봄에 쑥버무리를 한 상자씩 주문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하나씩 꺼내 봄을 녹인다. 생 쑥을 사용하기 때문에 딱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고, 그 맛 또한 봄날의 따스함과 푸르름, 설렘을 가득 담고 있어 건강하고 또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많은 양을 주문할 수 없고, 무엇보다 맛이 좋아 금세 사라지므로 초여름이면 사라지고 만다. 냉동실에 쑥버무리가 마지막 세 개, 두 개, 하나로 줄어들 때마다 올해 봄도 다 지나갔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의 쑥버무리 사랑은 유치원 현장학습에서 시작되었다.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으로 쑥을 캐러 갔고, 그 쑥을 유치원에 가지고 와서 선생님과 함께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다. 내게 그런 과거가 있다니 믿기지 않지만 나는 편식을 심하게 하고 나물류는 잘 먹지 않는 체격 작고 마른 어린이였다. 그런 편식쟁이 어린이가 얼마나 맛있고 재미있었는지 집에 와서 엄마한테 쑥버무리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엄마랑 같이 만들어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 따뜻한 기억 덕분인지 지금도 쑥버무리를 참 좋아한다.
콩을 섞어 만드는 집도 있지만 난 순정파로 좋은 국내산 햇쑥을 듬뿍 넣은 순정 쑥버무리를 좋아한다. 순우리말인 이름도 귀엽고 정감 간다. 이름 그대로 쑥과 쌀가루를 설기게 섞어 쪄서 쑥버무리다. 대충 지은 이름인 것 같지만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여린햇쑥과 쌀가루, 설탕과 소금만 조금 넣어 찌면 끝이다. 모양을 잡지 않고 대충 있는 만큼만 찜기에 올려 쩌도 괜찮다. 백설기와 거의 동일한데 생쑥이 통째로 들어간다는 점이 다르다. 이래 저래 좋아하는 이유를 붙여보지만 사실은 맛있어서 좋아한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이 쑥버무리의 존재를 알게 되거나, 떠올리게 되어 떡집의 주요 구성원으로 부상했으면 좋겠다. 쑥버무리는 찐 맛도리라고.
그러고 보니 유치원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을 다니고, 사진을 찍어 인쇄해 집으로 보내주셨더라.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선생님이 저 많은 아이들을 인솔하고, 쑥을 캐고, 그걸 손질해서 떡까지 만들다니 너무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그런 경험이 하나둘씩 적층 된 덕에 편식을 조금씩 고치고 지금까지 봄마다 쑥버무리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번 달 카드 값을 생각하고, 떡 값을 한 번 보고 망설이다가 아직 올해 쑥버무리를 주문하지 못했다. 글을 쓰다 보니 아무래도 빨리 주문해야 할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주문서가 오픈되는 날에 알람을 맞추고 기다린다. 이렇게 기다릴 날을 하루 만들어 다음 주도 살아내야지. 봄날의 햇살을 닮은, 봄바람과 희망을 담은 쑥버무리를 먹으면 이번 년도에는 내게도 봄이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