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자 SNS 피드는 온통 꽃 사진으로 어지럽다. 각 지역 벚꽃 명소, 개화시기, 현 상황, 목련 뷰 카페 등 봄 테마 게시물이 한창이다. 나만 방구석인 것 같다. 벌써 백수가 된 지 4달 차에 접어드는데 어디 당일치기 여행도 가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유행을 시작한 오미크론이 요 몇 달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동안 우울함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곧 다시 찾았다) 집과 요가원, 독서실만 오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 겨울은 롱패딩과 기모 추리닝 한 벌로 보냈다. 창문을 열자 내 회색빛 방에도 봄기운이 살랑거린다. 설상가상으로 SNS에 온갖 꽃놀이 사진이 나를 자극한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도 경주로 벚꽃기행을 떠났다. 이 우울함을 좀 날려버릴 요량으로 배낭 하나 메고, 목에는 카메라를 걸고 혼자서.
경주에 도착 후 첫 행선지는 황리단길이다. 사람 많은 곳은 가지 않겠다던 결심과 달리 황리단길에 핫하다는 육회물회가 먹고 싶어서였다. 같은 가게는 아니지만 8년 전 여름 경주에 방문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은 음식이기도 하다. 이미 봄을 넘어 초여름이라 해도 무리가 아닌 이 날씨에 시원하고 고소하게 육회 한 그릇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그 핫하다는 황리단길로 향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맙소사, 황리단길에 들어서자 혹 이 도시는 경주역 혹은 경주톨게이트에서 커플인지 아닌지 검사라도 하는 걸까 착각이 든다. 나 빼고 모두 살랑살랑한 봄 옷으로 맞춰 입은 커플이다. 십중팔구가 커플이고 십중이일은 가족단위다. 나도 나름 겨우내 입던 검은 롱패딩을 벗어던지고, 요즘 즐겨 입는 플리스도 두고 밝은 색 니트에 귀여운 디자인의 카디건을 입었건만 또 내 주변에만 꽃이 피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꿋꿋하게 혼자 웨이팅 리스트를 작성하고, 1인이니까 빠르게 자리가 나는 행운이라도 깃들길 바라본다.
요즘은 대기 시스템도 비대면으로, 빠르고 편리하게 진행된다. 키오스크에 이름, 연락처, 메뉴 주문까지 미리 넣고 나면 메신저로 내 앞 대기 팀 수와 예상 대기시간이 전송된다. 내 바람과 달리 기계가 예측한 대기시간 32분을 거의 채우고 나서야 입장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 애석하게도 4인 테이블 가운데에 전통 한옥의 창살 모양을 한 구멍이 송송 뚫린 간이 칸막이를 올려놓은 좌석을 안내받았다. 내 옆자리는 20대 커플이다. 엿듣는 것 같아 듣고 싶지 않은데 사실상 한 테이블에 앉은지라 그들의 대화가 너무 잘 들린다. 마치 3인이 함께 식사하고 있는 착각이 든다. 주위를 둘러보자 혼자 온 사람은 나 뿐이다. 혼밥 마스터라고 생각했는데 관광지의 유명 맛집은 다소 난이도가 있다.
육회물회는 솔직히 맛없을 수 없는 메뉴다. 육회도 맛있고, 물회도 맛있는데 그 둘을 합치지 않았는가. 가장 가운데, 그리고 가장 위에는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쳐낸 육회가 한 뭉치 올라가 있고 그 아래로는 달콤하고 아삭한 배와 오이를 채 썰어 국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담았다. 그 아래로는 새콤하고 달콤한 붉은 육수를 살얼음 동동 뜬 상태로 자작자작하게 부어 내었다. 고소하고 신선한 육회를 우선 한 점 맛보고, 삶은 면을 넣고 육회와 육수와 야채를 잘 섞어 한 입에 넣는다. 고소함, 달콤함, 매콤함, 새콤함이 한 입에 들어온다. 면을 다 먹은 다음에는 국물에 밥을 말아 탄수화물로 든든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완벽히 한국적인 음식이다.
사실 육회물회는 좀 의아한 이름이다. 이 메뉴를 만든 사람이 손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합성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양념한 육수에 야채와 회를 곁들인 음식이라 물회라고 명명한 것인데 여기에 회는 없지 않은가. 이 작명법대로 한다면 물육회 정도 되어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물육회보다야 육회물회라고 하는 것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이제는 이 단어가 하나의 명사처럼 자리했으니 더 이상 토달지 말고 받아들이기로 한다.그 순간 '회'의 사전적 정의가 무엇인가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다. 날고기나 날생선을 잘게 손질해 먹는 음식을 회라고 칭한다고 나와있다. 이 음식에 회가 있었구나. 육회를 괜히 육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구나. 생선회가 없는 것이지 회가 없는 것이 아니구나. 나의 무지함을 또한번 깨달으며 음식명을 다시 곱씹고 고소한 육회를 씹는다. 혼밥의 단점은 이렇게 끊임없이 잡생각이 가지 뻗기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유튜브를 많이 본다. 그들은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는데, 휴양지나 분위기 좋은 곳에 가면 이런 곳에 혼자 와서 너무 슬프다고, 커플천국 솔로 지옥에 혼자 있는 기분이라는 멘트를 자주들 한다. 그걸 볼 때는 ‘혼자가 뭐 어때’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 내 모습을 보니 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물회일 때도 좋고 육회일 때도 좋지만 물회육회로 합치니 이렇게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이 되지 않았는가. 월요일 오후 2시 20분에도 대기명단에 이름을 쓰고 기다려야 하는 유명세를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행복한 기분보다는 이런 쓸쓸함을 느낀 이유는 필시 배가 고파서였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씩씩하게 벚꽃 여행을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