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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May 10. 2022

Way Back Home

 도서관에 갔다가 정기간행물 코너 한 켠에 큰 책장을 발견했다. 국내 대학의 정기간행물을 모아둔 코너였다. 나의 모교 이름으로 된 칸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도 잠시, 비어있는 칸을 보자 쓸쓸한 마음이 든다. 내가 4년간 강의실만큼, 아니 강의실보다 더 많이 들락거렸던 편집실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졸업 후 후배를 통해 들었다. 내가 몸담았던 교지편집위원회도 폐지된지 10년 가까이 지났고, 다른 대학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책장의 많은 칸이 비어있었다.


 대학 시절, 가을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홈커밍 데이’라고 하여 졸업한 선배들을 학교로 초대하여 오랜만에 편집실 구경도 시켜드리고, 장소를 빌려 후배들 장기자랑도 선보이곤 했다. 식사와 술도 한 잔 하며 까마득한 선배들의 공감 가지 않는 라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선후배간의 정을 나누는 행사였다. 행사를 준비해야하는, 20대 초반이었던 나로서는 30대를 넘긴 선배들이 어렵기만 했고 그런 행사를 왜 하는지도 사실 잘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니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석한, 졸업한지 10년쯤 된 선배는 지금 내 나이 정도겠구나 싶다.


 얼마 전 대학 선후배 단톡방에서 친구가 공유를 공유했다. 문득 학교가 그리워 검색해봤는데 유튜브에 새내기에게 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이 있어 봤다며. 그가 캡쳐해 준 사진을 보니 놀라보게 화려한 신축 노천극장도 있고, 내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강의실 모습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맘때 우리 학교 벚꽃길은 참 예뻤는데.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 답게 벚꽃이 만개했을 때는 정말 시험 직전이어서 한 번도 편안하게 꽃을 즐기지 못했다(그렇다고 딱히 학점이 좋은 건 아닌데 그냥 놀았다면 좋은 추억이 남았을 것 같다). 야속하게도 시험만 끝나면 다 져버리는 그 벚꽃길에 다시 가보고 싶다. 도서관에 남아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청춘 대신 그 길을 거닐고 싶다. (요즘은 온난화로 인해 개화 시기가 빨라져 시험기간과 봄화시기가 겹치지 않는다고 한다.) 벚꽃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이어진 단풍길도 참 아름다웠는데.


 졸업하고 한 번도 학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고, 외부인 출입을 막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졸업자가 가기에는 머쓱하다. 한 번 가고 싶은데 핑계도 계기도 같이 갈 사람도 없다. 선배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생겨난 게 홈커밍데이가 아니었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4년간 홈커밍데이 준비만 하고 정작 초대는 받지 못하게 됐다. 핑계삼아 학교에 한 번 갈 일이 생기면 좋을 텐데. 졸업한 직장인 선배들이 왜 주말에 시간을 내고 돈을 쓰며 학교에 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마도 오랜 시간 설레며 그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지금이야 학교에 가봤자 반겨줄 이가 아무도 없고 딱히 핑계도 없으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방문하는게 쉽지 않다. 학교가 그리운건지 20대 초반의 내가 그리운건지. 아마 후자 쪽이겠지만 그 장소에 내 20대 초반의 4년이 고스란히 담겨있을것을 생각만해도 괜히 뭉클해진다. 주책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홈커밍데이’라는 말은 사실은 참 정겨운 말이었구나. 내 과거가 담긴 곳을 홈이라는 따뜻한 단어로 표현해주었고, 잠시나마 돌아갈 명분을 만들어 주었으니. 어린 후배들 사이에서 ‘내가 이런 곳에 와도 되나’가 아니라 ‘졸업한지 한참 지난 선배들이 주인공’인 행사라니. 돌아갈 곳이 없는 화석은 조금 서글프다. 교지편집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학생회관에 있던 편집실도 다른 동아리방이 되었다. 구심점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선후배 사이도 소원해져 지금은 학교를 다닌 시기가 일치하는, 친했던 선후배들과 종종 연락할 뿐이다. 미숙하고 무모하고 대담했던 그 시절이 비어버린 도서관의 책장처럼 텅 빈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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