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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Nov 25. 2021

기억과 추억은 한 끗 차이

 2021년은 4인 모임 제한,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실시로 제대로 된 회식을 하기 어려웠다. 총 5명인 우리 팀은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쉬는 날 식사를 하거나, 2명 3명 따로 예약하고 식당에 가서 3미터나 떨어진 테이블에 따로 앉아 식사를 한 적도 있다. 4인 모임 제한이 해제된 후 올해 들어 처음으로 회식을 할 수 있었다. 5명이 다 모여 훠궈 국물이 끓는 모습을 보다가 한 직원이 말했다.


"저 곧 이사하는데 팀원 다 같이 집들이 한 번 하시죠. 지난 팀에 있을 때 팀원이 전부 모여 집들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참 오래 남더라고요."


 각자도생 하기 바쁜 요즘 세상에 직장 사람들이 모여 집들이를 하는 모습은 익숙하진 않다. 나 어릴 적만 하더라도 이사 가면 친구, 가족, 직장동료 매주 집들이하는 일이 흔했는데 친구나 가족 모임도 잦지 않을뿐더러 직장 동료는 더더욱 흔치 않은 일이기에 기대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시킬 겸 스크린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 팀 성별 구성은 여자인 나를 빼고 모두 남성이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스크린 야구장이라니. 운동신경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직장동료들 앞에서 몸개그 할 것 같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망신살은 물론 나와 같은 팀 팀원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짝 긴장하며 근처 야구장으로 향했다.


 내가 생각한,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 전부인 스크린 야구의 이미지는 등장인물에게 고민이 있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튀어나오는 공을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내가 간 곳은 꽤나 정교한 제대로 된 야구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팀 구성, 팀 선택, 구속 조절 등 세팅을 바꿀 수 있고, 여성 플레이어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야구경기를 보러 간 적은 몇 번 있지만 야구 방망이를 들어본 것 자체가 처음인 나는 간단하게 매트 잡는 법을 배우고 최대한 집중하여 공을 끝까지 보려 노력했다. 사실 공을 맞추기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고, 맞추지는 못할 망정 내가 공에 맞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기대했던(?) 바에 비해 그래도 타율이 4프로 가까이 되는 엄청난 실력을 발휘했다. 물론 치긴 하지만 아웃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패잔병이 공을 치러 들어갈 때, 칠 때, 돌아올 때마다 잘했다 잘했다 큰 소리로 응원해주고 하이파이브해주는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솟아나는 열의와 무관하게도 무수한 헛스윙과 아웃을 남겼다.


 그래도 팀원을 잘 만난 덕에 9회 말 2 아웃에서 내가 매트를 넘겨받았을 때 우리 팀이 1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이전에 이미 만루 상황에서 아웃당해 공수 교체를 해버리기도 하고, 다 된 밥을 병살로 엎어버리리도 한 전력이 있지만 파이팅을 외치며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마지막에 안타로 1점 차 역전승을 거두게 됐다. 드라마나 명언에서만 보던 9회 말 2 아웃 역전승이라니. 게임이지만 팀에 폐가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해냈다는 짜릿함이 밀려왔다. 가볍게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자기 전에도 그 일이 기억나는 걸 보니 아 이 일도 오래 기억되겠구나. 추억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기억(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추억** (追憶)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단어 풀이로는 명확히 두 차이가 와닿지 않지만 내 나름 풀이해보자면 기억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저장, 추억은 기억에 개인적인 감정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내게 이 날은 기억을 넘어 추억이 되었다. 집들이하자던 직원이 말한 전 팀원들과 집들이도 추억이겠지.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 중 어떤 것은 추억이 되고 어떤 것은 기억이 되어 남는다. 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사라졌다가 불현듯 재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한 놀이 하나에도 생각이 이리 많아 나는 예민하다는 말을 듣고, 오늘도 밤잠을 설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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