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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Sep 24. 2021

출근길 룰루랄라

 인턴 시절, 출근 시간은 8시였으나 8시에 맞춰 출근했다간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고 타박 듣기 일쑤였다. 늘 30분쯤 일찍 출근하긴 했으나 사실 눈치가 보여서만은 아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근무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거나 혹은 둘 다인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은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회사 앞에 도착했는데 차마 발이 떨어지질 않아 회사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너무 출근하기 싫어서 눈물이 났다. 아침 7시에 회사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누가 볼까봐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고, 거울을 보고 애써 괜찮은 척 어기적거리면서 출근했다. 


 그 시절, 회사에 가는 것이 너무 끔찍하고, 쉬는 날에도 회사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했다. 출퇴근길에 이동할 때면 짧은 시간이라도 늘 노래를 듣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신나는 노래만 골라서 '출근길 룰루랄라'라는 이름을 붙인 폴더를 만들었다. 


 대학 시절, 체육대회가 열릴 때면 경기 진행 상황이나 승패보다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응원이었다. 선후배, 동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 뛰며 응원을 위한 응원가가 아닌 단순히 신나고 재밌는 행위로서의 응원을 했던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응원가를 들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져 가슴이 쿵쿵 뛰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던 그때의 즐거운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출근길 룰루랄라 폴더명은 출근해야 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응원하여 이 괴로운 마음을 덮고 힘내 출근하고자 지은 역설적 이름인 것이다. 2000년대의 빠른 비트와 테크노풍의 댄스 음악이나, 당시 음원 사이트 상위에 있는 곡 중 신나는 곡을 마구잡이로 골라 넣었다. 집에서 출발하면서 무조건 노래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노래만 들으며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익숙한 발걸음대로 가다 보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끔 출근길 룰루랄라 폴더에 있던 노래를 우연히 들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고 그때의 내가 너무 가엾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그만두었으면 될 것인데 나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수없이 많은 불합격 통보 끝에 합격한 대기업 인턴이었다. 인턴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주어지는 전환 기회만 잘 잡으면 무탈히 꿈에 그리던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괴로움은 으레 참고 견디는 것이라 생각했다. 참으면 지나갈 일이라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를 달래고 속이면서. 


 인턴 생활을 마치고, 면접과 그간 업무평가를 기반으로 사원 전환 시험이 있었다. 인턴 기간에 큰 탈이 없으면 대개 합격하는 분위기라 나 역시 별 탈 없이 전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취업 성공의 목전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나와 동고동락하던 동기들의 프로필사진은 하나둘 사원증이나, 신입사원 연수 사진으로 바뀌었고, 나를 걱정하던 동기들의 연락에는 질투가 나서 답장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였다. 합격률이 불합격률보다 훨씬 더 큰, 적부 수준의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티 내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는 모습을 면접관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상태로 사원으로 정식입사한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사들은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쓴 실패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 당시 응원가였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아리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너무 힘들어하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7년이 지났지만 출근길에 댄스곡을 듣는 것만은 변함 없다. 힘들었던 그때로 돌아가 과거의 나를 위로할 수 없고, 오늘의 힘든 나를 미래의 내가 안아줄 수 없으니 지금의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수밖에. 오늘 아침에도 집을 나서면서 신나는 음악을 재생했다. 이 노래는 나만의 응원가, 오늘도 나를 응원하며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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