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작성일 21.10.04.
급하게 증명사진을 출력할 일이 생겼다. 다행히 집 근처에 사진관이 몇 군데 남아있었다. 이 사진관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 동네에 살아온 내게 아주 익숙한, 오래된 사진관이다. 매일 지나가는 길에 풍경처럼 있는 사진관에 십여 년 만에 방문했다. 증명사진 파일을 들고 출력을 맡겼다. 5장에 2만 원이라는 가격에 깜짝 놀라는 내게 사진관 주인은 덤덤하게 "안 비싸요, 비싸면 그 많던 사진관들이 다 없어지지 않았겠죠."라고 말한다. 같은 자리에서 41년을 영업했다는 사장님은 이 자리에서 사진관을 시작한 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고 한다. 그 아들이 지금 38세란다. 사장님의 말을 들으니 '비싸다, 시내로 갈걸 바가지 쓴 것 같다'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사진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역사구나 싶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보편화되어 쉴 새 없이 인증샷을 찍고, 사진을 찍는 것은 눈 깜빡하는 일만큼 쉬운 일이 됐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진은 가족여행, 소풍이나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 찍는 거였다. 24방짜리, 36방짜리 필름이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찍었고,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면서 장난치면 아빠에게 혼났다. 그렇게 찍은 필름을 들고 사진관으로 가서 며칠을 기다려 사진을 받고 가족이 둘러앉아 앨범에 사진을 끼웠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필름에 동그라미를 쳐서 사진관에 가 크게 인화해 집에 걸어두기도 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증명사진이 필요하다거나, 백일, 돌잔치, 결혼, 환갑처럼 생에 특별한 날 행사처럼 방문하는 곳이 사진관이었다. 내가 가진 옷 중 좋은 가장 옷을 골라 입고 머리도 반듯하게 다듬고 '턱을 좀 내려보세요', '손을 허리에 올려보세요', '웃으세요', '너무 환히 말고', '좋습니다~' 하는 사진사의 지시를 굳은 얼굴로 따라 하다 보면 촬영은 끝났다. 하루 이틀 있다가 사진을 받으러 가는 설렘, 작은 종이봉투 안에 사진을 넣어 돌아와 꺼내보던 그때의 추억이 생각났다.
지금의 디지털 사진은 참 편하다. 빠르고, 얼마든지 찍을 수 있고 지울 수도 있다. 사진 찍기 전에 어떤 모습일지 미리 구도를 잡을 수도 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성장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빠짐없이, 생생하게 담아 기록할 수 있다. 이런 비교할 수 없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방송에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연예인 이야기가 나왔다. 필름 카메라 특유의 매력에 빠져 옛 중고 카메라를 고치고, 닦고,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굳이 하고 있단다. 그런데 불편해 보이기는커녕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잊혀 가는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서 추억과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있기에 풍화 속도가 조금 늦춰지는 것 아닐까. 50년쯤 지나면 후세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를 보고 기함을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사진을 그렇게 불편하게 찍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