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이젠 과거가 되어 버린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일까.
내가 대학생이던 2009년만 해도 스마트폰은 이제 갓 출시되어 보급되던 시기였다.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아주 먼, 슬로우어답터에 가까운 나는 스마트폰이 출시됐을 때 투피엠이 선전하던, 배터리 커버를 바꿀 수 있는 화제의 '코비폰'을 샀다. 텔레비전 광고부터 알록달록 화려한 이 휴대폰의 가장 큰 특징은 노란색, 초록색, 핑크색 등 원하는 색의 케이스를 구매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 케이스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핸드폰 뒷부분 색을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게다가 터치폰이었다! 지금도 인기가 많은 2PM이 가요대상을 휩쓸던 시절에 이 핸드폰에 광고모델까지 했으니 그 인기는 엄청났다. 그에 편승해 나도 스마트폰을 등지고 코비폰을 샀다.
지금도 그렇지만 통신사 정액요금제 때문에 핸드폰을 사면 1-2년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해서 나는 스마트폰 탑승이 무척 늦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은 2G 폰을 사용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개강하면 수업시간표를 세장 뽑아 하나는 책상 앞에 붙이고, 하나는 클리어 파일에 강의 계획표와 함께 꽂아두고 다녔다. 나머지 한 장은 동아리방에 제출한다. 그러면 신입생들이 학창 시절 칠판 옆에 있던 큰 시간표처럼 생긴, 우리가 교내 문구점에서 하드보드지를 사서 만든 시간표에 각자의 휴강 시간에 이름을 붙여두고 한 학기 내내 다 같이 시간표를 공유했다. 주로 점심시간이나 공강에 과방에 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시간표를 보고 휴강인 사람을 불러내거나 하는 용도로 쓰였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하면, 단체 톡방에 초대해서 축하해주었다. 스마트폰을 늦게 산 나는 단체 톡방에서만 한 이야기를 하면 소외감이 들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 단체 톡방에서 할 법한 모든 공지사항은 문자로 전달했다. 핸드폰 주소록에는 그룹을 만들어 단체 문자를 발송할 일이 있으면 그룹 전송 기능을 이용하곤 했다. 내가 보낸 문자를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유용한 일이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답장 없는 상대방을 보며 안읽씹이 차라리 더 낫냐, 읽씹이 낫냐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놀랍게도 2G 폰은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는 요즘 친구들에게는 어색한 이야기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배터리 케이스만 해도 그렇다. 몇 년 된 이야기지만 한 포털사이트에 초등학생이라고 밝힌 작성자가 '핸드폰 배터리가 없으면 보조배터리를 연결하거나 해야 하니 불편하다, 그래서 배터리를 바꿔 끼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았다'며 "미래에는 배터리를 바꿔 끼울 수 있겠죠?"라고 작성한 글이 소소하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탈착형 배터리를 모르는 세대라니.
내 동생만 해도 내가 강의 시간표를 무려 출력해서 들고 다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내가 대학 등록금을 은행에서 직접 내고 도장이 찍힌 종이를 받아온 것도 너무 충격적이라며 나를 아주 옛날 사람 취급한다. 몇 년 사이에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해버려 나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등록금을 내려고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줄 서던 시절이라니.
또 하나, 안타가운 소멸이 있다. 무궁화호 야간열차 노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학 때 개강 전 주말에는 동아리원들과 야간열차를 타고 해돋이를 보는 엠티를 다녀오곤 했다. 3월 개강인 추운 겨울에도 갔었고, 9월 개강에도 갔었다. 겨울에는 동아리 단체 과잠바를, 여름에는 단체 티셔츠를 입고 대학생 동아리인 티를 팍팍 내면서. 그땐 그게 왜 창피하지 않았는지, 제일 편하고 좋은 옷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점심 식사하러 나갈 때 목에 메고 있던 사원증을 후다닥 주머니에 넣는다거나, 운동을 배우러 가서 직업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든가 하며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몸과 신분을 사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별 계획 없는 엠티는 다음과 같다. 개강 전 주 주말에 학교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다 같이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를 타고 한두 시간 들뜬 마음에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객실 불이 꺼진다. 그러면 밤새 운영하는 매점칸으로 옮겨 간식을 먹으며 밤새겠다고 객기를 부려보지만 슬슬 잠이 오는건 어쩔 수 없다. 결국 객실로 돌아가 자다가 새벽 5시쯤이 되면 정동진에 도착하는데, 해돋이 명소 정동진에 도착하면 아직 해가 뜨기는 이른 시간이라 함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겨울에 그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두운 바닷가에서 어떻게 몇 시간이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추위를 견디고자 어둠만이 깔려 있는 바닷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리기 시합', '기념사진 촬영'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떠오르는 해를 말없이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해가 뜬 뒤에도 바닷가에서 조금 더 놀다가 아침 일찍 문을 연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몸을 녹였다. 식당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한 번은 우리 동아리 담당 교직원 선생님이 지원금을 주셨다.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꽤 큰돈이었고, 10명 안팎이었던 우리는 무려 인당 만 오천 원의 전복 삼계탕을 먹었던 기억만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에게 1인 1 전복이 들어간 삼계탕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아무리 전복을 먹었다고 해도 기차 안에서 잤다고 해도 밤샘은 힘들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다른 걸 할 체력은 없고, 돌아가야 한다. 기차가 버스보다 더 비쌌기 때문에 돌아갈 때는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다 같이 학교로 돌아갔다. 그게 별로 특별할 것도 없던 우리의 소소한 엠티였다. 이젠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려면 최소 한 두 달 전에는 일정을 맞추고 휴가를 맞춰야 한다. 그래도 날짜가 가까워지면 누군가 일이 생기는 일도 부지기수라 서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2022년 7월 31일인 오늘, 공식적으로 야간열차 운영이 종료된다. 이젠 밤새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정동진역에 내려 일출을 기다리는 일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을 것이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우리들 인생사라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꿈만 같았었지
이제 더는 없겠지만
지난날로 남겨야지
<DAY6-행복했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