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작성일 20.11.19
* 2020년에 작성해둔 글을 브런치 개설 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글 작성 시점과 현시점이 맞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원글 작성일은 제목 하단에 적어두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띈 책은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였다. 그날따라 그냥 눈에 들어왔고, 작고 가벼워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기 좋아 보였다.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도 힘들어진 시기였다. 때문에 나의 가장 최근 해외여행은 2019년 홀로 다녀온 교토(6월 초로 노 재팬 운동 직전이었다.), 가장 최근의 국내여행은 2020년 6월 말 친구들과의 한라산 등반이었다. 국내여행도 너무 조심스럽고, 제주도에 사람이 너무 많아 한라산만 짧게 다녀온 여행이 1년간 국내여행의 전부다. 거진 1년 반을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탓에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던 타이밍에 여행 이야기로 가득 찬 책을 한 권 읽고 나니 여행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이은 한파에 지쳐서인지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에 있는 여유로운 휴양지에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해도 올해는 무리요, 해외여행이 본격화된다 해도 바로는 갈 수 없을 테니 앞으로도 최소 1-2년은 해외여행이 힘들 것이다. 다행인지 여권도 2019년에 만료되어 이제 나는 여권도 없는 몸이다. 당시에는 2020년에 도입된다는 새 여권을 만들고 싶어 여권을 갱신하지 않았는데, 코로나19가 퍼지면서 굳이 지금 여권을 발급받아 사용기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보여 새로 만들지 않았다. 언제쯤 여권이 필요해질까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직장 상사와 점심 식사 후 산책을 하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어딘지 물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해외여행에 대한 그 모든 욕구가 아예 소멸된 상태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도 앞으로 몇 년은 해외여행이 쉽지 않을 테니까.
얇은 책이지만 많은 내용이 담겨 있고, 새로운 시각과 작가만의 방식으로 여행에 대해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작가의 필력과 지식과 생각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와닿았던 말은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라는 구절이었다. (역시 나는 지극히 대중의 취향인지 책을 덮고 나니 책 뒷면에 방금 이야기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몇 년 전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떤 블로그를 본 적 있다. 그는 여행지의 하루를 기록하면서 평소였다면, 회사였다면 회의 끝나고 또 회의 그렇게 지나갔을 하루인데 여행지에서는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적었고 몇 년이 지나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여행지에 가서 하루를 돌아볼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출근해 정신없이 업무를 하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또 버스를 타고 교통체증으로 성산대교 위에 한참 머물며 한강 위로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할 일을 조금 하다가 잠드는 나의 하루를 떠올려본다. 하루 중 가장 길게 묘사한 석양을 보는 시간이 그나마 오늘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았던 일이다. 몇 년 전 캄보디아로 여행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일행 두 명과 직원 두명만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호수 외에는 아무것도 가릴 것 없는 톤레삽 호수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감회에 젖어들었던 시간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여행의 이유 저자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출퇴근 과정과 업무와 내일 또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뺀 일상의 부재가 석양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