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귀여운 포인트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작고 짧지만 따뜻한 순간 덕에 피식이라도 웃고, 그 소소한 기쁨이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
첫 번째 순간. 점심시간 산책길이었다. 직장인이 많은 광화문 근방을 산책하다 보면 길을 지나가면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분명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려고 한 산책인데 산책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담배 두 대는 피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날도 골목길에 접어들었는데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 두 분이 손 막대기를 들고 입 주변에 대었다가 떼는 게 보였다. ‘아.. 또 담배구나’ 싶어 피해 가려는 순간 자세히 보니 담배가 아니라 흔히 '하드'라 불리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 두 분이 식사 후 골목길 귀퉁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당연히 담배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인상을 찌푸렸던 내 얼굴에도, 일행 얼굴에도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식후 당 충전이 건강에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식후땡보다야 나을 테니 식후당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길.
두 번째 순간. 밤 10시쯤이었나. 골목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겨울밤이었다. 코너를 돌려고 하는데 아기 목소리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는 소리가 났다. 한 밤중에 길거리에서 오징어 게임도 아니고 등골이 오싹해진 채로 코너를 돌았는데! 30대 중반쯤 되는 여자가 무표정하게 한 손은 장바구니를 안고, 한 손은 공중에서 ㄴ자를 그리며 어색하게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내 바로 앞에 5~6세쯤 되는 여자 아이가 전봇대에 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동작 그만 자세로 멈춰 있던 사람은 아이의 엄마인 듯했다. 엄마는 마지못해하는 놀이인 듯 무표정하고 무심한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났다. 순간 눈이 커져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민망하기도 했다.
세 번째 순간. 충청도에서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터미널에서 버스로 20여분 떨어진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마침 장날이라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버스 속도에 한 번 놀라고, 연령대가 높고 거동이 수월하지 않아 버스 내에서 이동하거나 하차 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르신들을 위해 기사님이 안전히 하차하실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신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문이 닫히면 질주본능, 문이 열리면 친절 모드랄까.
버스 뒷문으로 하차하시는 할머니가 계단을 내려가시기 버거워 보여 마침 근처에 있던 내가 손을 잡아드렸다. 하차 후 그냥 가실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내 손을 한 번 힘주어 꼬옥 잡고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마워, 복 많이 받아.” 하고 웃으시는데 버스 문이 닫히고 도보로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괜히 뭉클해졌다. 따뜻하다.
버스에 점점 사람이 많아지자 앞자리가 굉장히 붐볐다. 한 승객이 “거 뒤에는 똥 묻었슈?” 하고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뒤쪽으로 옮기시는데 순간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더 웃지 않으려 마스크 속으로 입술을 꽉 물었다. 서울 버스 안이었다면 “뒤로 좀 갑시다!” 했을 일이다. 어떻게 그 짧은 상황에 저런 간접 화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은근하고 고급스러운 충청도식 유머가 공존하는 충청도 버스다.
콜센터 직원의 고충을 담은 단편 소설을 본 적이 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들이 실제로 꽤나 자주,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노동자를 위해 콜센터 연결음으로 ‘전화를 받는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오기도 한다. 통화를 마치며 내게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인사말을 해 주는 직원에게 나도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마디 하자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듯 몇 초 정적 후에 버벅거리며 ‘감사합니다 고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대답이 들려온다. 종일 받는 전화 100여 통 중 내 인사가 그녀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순간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