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작성일 21.03.02
31살 생일이었다. 처음 영양제를 생일선물로 받은 건. 두 명의 친구에게 각각 종합비타민과 프로바이오틱스를 받았고, 영양제는 아니지만 아프지 말라며 선물해준 짜 먹는 홍삼과 건강 챙기길 바란다며 보내준 하루견과 세트도 받았다. 생일은 아니지만 잠을 못 자 힘들다는 하소연에 마그네슘을 선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결정타로 스트레스 해소제를 받았다. 사실 스트레스 해소제란 말은 별칭에 가깝고, 허브 성분 영양제로 심신 이완에 도움을 주어 불안감 완화와 우울증 개선, 숙면에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
스트레스 해소제라니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마법약처럼 느껴지는 이 제품을 선물한 건 직장 상사다. 그녀 역시 직장 선배로부터 이 약품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회사 후문에 위치한 약국(그의 말로는 우리 회사 직원 맞춤 온갖 영양제를 판매하는 곳)에 점심시간에 홀로 방문해 스트레스 해소제를 대량 구매했다고 한다. 2월 마지막 금요일,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크게 웃으며 점심을 먹고 헤어질 때 내게도 필요할 것 같다며 영양제를 건넸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영양제 삼아 먹고 있다고, 열대우림을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한 색과 야자수, 앵무새가 그려진 작은 카드에 '어딘가에서 같은 것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기분이 좀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멘트와 함께.
이로써 책상 위에 영양제가 하나 더 늘었다. 지금 회사 책상 위에 있는 영양제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위 건강에 좋은 양배추 환,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프로바이오틱스와 종합비타민, 그리고 이걸 먹고 난 뒤 아침에 눈을 번쩍 뜰 수 있게 되었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구입한 비타민B, 아토피 환자에게 좋다는 달맞이꽃 종자유다. 스트레스 해소제는 이완제이니 집에 가져가 마그네슘 등 자기 전에 먹는 영양제 무리에 합류할 예정이지만. 하루에 물을 2L 이상 마셔야 좋다는데 이 제품을 모두 마시려면 최소 물을 500ml 이상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영양제의 순기능 중 하나일까. 내가 유난스러운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책상 위에 영양제 하나 없는 직원은 찾기 힘들다. 간 건강보조제, 비타민, 홍삼, 오메가3···. 모두들 내 안의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다.
생일 선물은 모름지기 카페 기프티콘이나 내 돈으로는 사기 망설여지던 비싼 목욕제품이었던 시절(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는 것이, 숙면이, 자고 나면 피로가 개선되는 것이 당연했던 그 시절이다.)을 지나 어느새 영양제로 마음을 표현하는 N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1N년, 2N년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땐 어떤 선물을 하게 될까. 지금 당연하지만 그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오늘 밤의 숙면을 위하여 영양제를 들고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