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야 Aug 28. 2022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세상에 찌들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속담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줄 일이지 배가 아프다니. 그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배가 아프다 못해 쓰리다. 두 달 동안 올인했던 회사 채용 전형이 마무리되는, 최종 합격자 발표날 아침이다. 초조한 마음에 딱히 할 것도 없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결과는 저녁 6시쯤 나올 것이다. 서류 합격자 발표도,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도 저녁 6시에 나왔다. 아직 오전 9시밖에 안 됐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해 점심 약속을 잡았다.


 점심에 뭘 먹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면접 전형 결과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링크를 누르고, 내가 지원한 채용 공고명을 클릭하고, 이름과 이메일, 비밀번호를 친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는 게 느껴진다. 결과가 어떻든 난 최선을 다했으니 초연해야지 다짐했건만 잘 되지 않는다. 결과 확인 창을 보고 심장은 아직도 쿵쾅쿵쾅 뛰는데 귓가에는 삐-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불합격. 예비번호마저 너무 뒷 번호라 가망이 없다. 최선을 다해도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최선은 기본값이고 최고가 되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다. 근거 없이 어쩐지 감이 참 좋았는데 이렇게 또 탈락이다. 지난 10년간 너무 많은 지원서를 써서 기억나지 않지만 이 회사를 적어도 5번은 지원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작년 말에도 한 번, 올해 초에도 한 번 썼었으니까.


 면접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는 2주 동안 설레기도 떨리기도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동안 새롭게 뜨는 채용공고도 보고 지원해해야 하건만 마음이 둥둥 떠 잘 되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 후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하므로, 시간이 별로 없어 미리 머리 펌도 했다. 합격자 발표하는데 2주나 걸리면서 왜 출근 준비는 며칠밖에 주지 않는 건지. 원래 이번 주말에 친구와 양양으로 서핑을 가기로 했었는데 약속도 취소했다. 월요일에 바로 출근인데 주말에 서핑을 다녀오기는 부담스러워서 혹시나 합격할 경우를 대비해서. 첫 출근 날에 옷은 뭘 입어야 하나 없는 옷 중 골라보기도 했다. 혼자 김칫국을 마신 내 두 달이 너무 아깝고 불쌍하다.


 그날 오후, 여느 날처럼 도서관에서 채용공고를 끄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전 직장에서 나와 같이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동갑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이직에 성공했다고. 어제 저녁에 발표가 났다고. 공기관, 정규직 합격. 타이밍도 참… 왜 하필 오늘일까. 아픈 가슴을 후벼 판다. 나도 합격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에 큰 검은 구멍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인데 손가락은 축하한다는 말을 쓰고 있다.


 다음 날은 또 다른 회사의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이번에 처음 지원한 회사였다. 지원서를 내려고 자료를 조사하다가 점점 마음이 가게 된 회사다. 서류 전형에 합격해도 필기시험, 세 번의 면접 전형이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니 그나마 다행일 것 같았다. 여기도 얄짤 없이 불합격. 기준이 뭘까. 차라리 수학능력시험처럼, 필기전형처럼 명확한 숫자와 등수가 있다면 좋겠다.


 앞으로 뭘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날이다. 친구들은 중간관리자로서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연차인데 나는 왜 가진 것 없는 취업준비생 처지인지.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친구가 취업을 했으면 축하해줘야 하는데 왜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지. 내 처지가 달랐다면 축하할 수 있었을까? 옛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조차도 틀리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프고, 마음은 쓰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종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