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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Sep 08. 2022

무직자의 명절맞이

 결국 또 계약직 일자리라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계약직은 정규직에 비해 경쟁률이 적을 테니 공백기가 더 길어지는 것보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계속 정규직으로 이직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신입 직원을 모집하는데 왜 자꾸 경력을 물을까. 같이 면접 들어간 사람 중 한 명은 경력이 10년 가까운 아이 아빠, 또 한 명은 공기업 해외지사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생신입인 나. 경험에 대한 답변을 하는데 나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이야기, 그들은 회사에서 성과를 냈던 이야기. 내겐 질문도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중고신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계약직이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으려고 계약직 일자리에 지원했다.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이직 준비를 했다. 퇴근하면 자소서 쓰기, 채용공고 보기, 영어점수 만료 기간은 왜 이리 빨리 자주 찾아오는지 주기적으로 영어 공부하고 점수 만들어 두기 등 일을 하면서도 이직 준비에 정신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재직 중 이직에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채용시장에 다시 중고신입으로 이리저리 발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경력도 어느 정도 쌓였겠다, 다녔던 회사가 큰 회사인 만큼 경력 인정에 도움이 되어 경력직 선발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신입도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이번엔 나도 중고신입으로 당당하게. 이젠 나이가 나이인만큼 정착할 곳을 찾아야 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정규직의 안정된 직장. 내가 원한 건 그게 전부였다. 채용 사이트에서 평점이 아무리 낮아도, 급여가 높지 않아도 그저 안정된 직장이 있었으면 했다. 퇴근 후에 취직 관련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 핸드폰에 채용사이트 어플이 없는 삶. 더 이상 자기소개서니 직무수행계획서니 그런 것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저녁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쓸 수 있는 삶. 그게 전부였다.


 무직 상태의 8개월이 직장인의 점심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난 8개월 동안 이룬 것은 없다. 수많은 지원과 자기소개서 작성, 그리고 불합격. 몇 번의 필기시험과 최종면접, 줄어가는 통장 잔고. 많은 회사가 내 안에 들어왔다가 나갔다가를 반복했다. 그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계절은 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무직 상태가 되던 추운 겨울로.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너무 오래 겪은 나는 몇 년 전부터 정규직만 고집했다. 채용공고도 정규직 아니면 제대로 보지 않고 창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또 계약직이라도 아쉬워져서 기웃거리고 있는 내 모습은 정말 실패한 인생 같다.


 ‘너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술에 취해 내게 조언이랍시고 떠들어대던 친척들에게 절대 내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무직 상태에 대해 알릴 수 없었다. 명절이 돌아온다. 나는 그간 그 어떤 가족모임에도 나갈 수 없었다. 만나면 분명 회사는 어떠냐 물을 것인데 거짓말을 하기도 싫었고 진실을 이야기하기도 싫었기 때문에 회피를 택했다. 퇴직 사실은 알리지 않고 이직 후에 이직 사실만 알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직 통보가 너무 어렵다. 나는 언제쯤 당당해질 수 있을까.


 입사 후 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세요(1000자 내외)


 2년도 아니고 1 기간의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 채용인데 1000자로 기술하란다.  말이 없어 벽만 본다. 도서관 열람실의 상아색 페인트로 칠한 벽이 꿈에 나올  같다. 잠을 자야 꿈을 꾸는데 잠도 잘 안 온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라 구립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4 동안   없는 나는 어딜 떠돌아야 할까.


내가 하루 종일 보는 상아색 벽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누가 이런 말을 했나. 명절 상여금이나 떡 값 주는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고, 가족 모임에서 어깨를 펴 본 적도 없는 무직자는 명절이 싫다. 현재 시각 9시 19분. 내일부터 연휴인데 열람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남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저 사람들의 노력은, 시간은 나의 그것들처럼 휘발되지 않기를.


 어릴 때 언니랑 참 많이 싸웠다. 어린 마음에도 싸움은 싫었다. 어느 추석 날 밤에 달님에게 손을 모아 기도했다. 언니랑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신기하게도 그 후 꽤 긴 기간 동안 언니랑 싸우지 않았다. 나는 한가위 보름달이 진짜 내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고 믿었었다. 그 아이는 쑥쑥 자라 25년 뒤 보름달에게 취업을 청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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