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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Oct 24. 2022

쾌변이 간절하다

실패한 노력도 노력으로 쳐줍니까

 사는 게 쉽지 않다. 아니 너무 어렵다. 백수가 되면,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동시에 바닥으로 침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끊임없이 나를 휘감는다. 점점 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 결국은 저 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고 고립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자책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3달간 8월에 한 번, 9월에 두 번, 10월에 2번 총 다섯 번 면접을 봤다. 숫자로만 본다면 취업 준비를 한다면서 3달간 한 일이 고작 면접 다섯 번이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5번 면접을 치르기까지 자기소개서를 적어도 10번 이상 썼다는 의미다. 그중에는 직무수행계획서를 요구하는 곳도 많아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하고 내 직무를 대입해 몇천 자의 직무수행계획서를 쓴 것이 포함된다. 다섯 번의 면접을 위해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그 면접만 준비한다. 회사에 대해 공부하고, 사업계획서를 읽어보고, 연말 보고서를 읽고, 뉴스 기사를 검색하고, 면접 기출문제를 작성해 답을 만들어보고 암기하고 이 일의 반복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이 담긴 세 달은 결국 또 백지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더 이상은 재충전이라는 그럴듯하고 이해 가능한 영역의 단어를 붙일 수 없다. 가장 최근에 면접을 본 세 곳에서 모두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집에서, 동네 카페를 전전하면서 취업을 위해 쓴 두렵고 설레고 열심을 다 했던 그 시간은 이력서에 쓸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았다. 내 노력이 내 시간이 투명하게 변한 것도 서글픈데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면접관에게 설명하고,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게 참 어려운 게, 열심히 취업준비를 했다고 하면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됐지? 너 능력 없네.’가 되고, 휴식을 취했다고 하면 ‘너 아무 생각 없네? 탈락’이 된다. 세계여행이라도, 제주도 한 달 살기라도 하며 그럴듯한 휴식이라도 넣어야 좀 그럴듯해 보이는 걸까.


 면접을 보면 거의 대부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면접을 잘 봤든 아니든 어차피 면접의 성패는 앞에서 결정되어 내 마지막 한 마디로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이 회사에 대해 어떤 점을 공부할 수 있어 좋았고,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면접에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대기 시간이 두 시간 걸려 면접관이 미안하다고 할 때 괜찮다고 했던 것, 퇴근 후 업무상 식사 자리 등이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한 것, 연봉이 적은데 괜찮냐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한 것 등) 이 말은 진짜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이 회사 현직자들도 이 알까 싶은 내용까지 공부하니까. 수년간 이 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도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고 암기하기까지 하니까. 면접을 볼 수록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지식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면접 대비를 하면서 “최근 읽은 책”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봤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보고서 작성법’에 관한 책이다. 면접 전 필기시험에서 보고서 작성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요즘 책도 거의 못 읽었다. 한가하게 편안하게 책을 읽은 처지가 아니라고요. 이력서에 비어 있는 그 공간이 사실은 비어 있지만은 않다고요.


 면접일에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정장을 입은 말끔한 내 모습이 좋았다. 도서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추레한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던, 누가 봐도 동네 백수인 모습 말고 말끔하게 입고 예쁜 가방을 메고 구두를 또각거리며 앞으로 출근길이 될지도 모르는 길을 가는 내 모습이.


 어제 방문한 한 인도 카레 식당에 붙어 있던 티베트 속담이 인상 깊었다.

“아홉 번 실패했다면, 아홉 번 노력한 것이다”


 내 노력은 이력서에는 공백이라는 약점으로 남았다. 노력은 돈도 되지 않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항상 노력의 가치를 높게 산다. 그렇다면 내 노력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실패했지만 가치 있는 노력 선상에 같이 올릴 수 있을까?


 가장 친한 친구는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고, 면접을 자주 보니 꼭 최종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래, 나 시원하게 똥 쌀래. 나도 쾌변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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