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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Nov 29. 2022

밥친구의 위로

 마음이 힘들 때는 내 안에 감정 기폭제가 있는지 별 것 아닌 것에 감동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작은 일에 폭발해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식사 메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밥친구 찾기다. 주로 혼자 밥을 먹는 나는 식사 중 무엇을 볼 지 신중하게 고르는데,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오면 바로 보지 않고 밥때를 위해 남겨두기도 한다. 밥 먹을 때는 딱히 집중이 필요 없고, 소리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예능이나 드라마가 적당하다. 내 기준에서는 별생각 없이 허허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게 최고다. 요즘은 예능도 호흡이 무척 빠르고 자막이 중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예능은 밥 먹으면서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옛날 예능을 5~10분 단위로 짧게 편집해 재업로드 한 유튜브 영상을 즐겨 보는 편이다. 그날은 2011년에 방영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한 에피소드를 골랐다.


(짧은 다리의 역습 20회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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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 중에서 내상의 회사 돈을 횡령한 우현을 찾기 위해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투입된다. 각자 두 명씩 짝을 지어 담당 구역에서 하루 종일 잠복한다. 중년의 남매는 놀이터에서 망을 보며 오랜만에 추억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던 진희는 줄리엔 낚시터에서 잡아 즉석에서 끓여준 매운탕을 먹으며 엄마 생각에 눈물을 짓는다. 지석은 하선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등 등장인물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경험을 한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우현은 미국에 있다는 소식에 인물들은 잠복을 접고 다시 집에 모여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하루를 완전히 공치게 해 미안하다는 내상의 말을 듣고 등장인물들은 말없이 각자 함께 잠복했던 사람의 얼굴을 보며 씩 웃으며 오늘을 회상한다. 그리고 내레이션 흘러나온다.


"세상에 공친 시간이란 없다. 어떤 시간이든 그 시간 이후와 이전은 무언가 달라져 있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가 아니다."


 우현을 잡아 회사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원래의 목표는 실패했지만, 등장인물들은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관계를 조금씩 바꾸고, 삶을 바꿀 것이다.


 이후 무언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달라지는 게 없어 슬플 때 이 말을 되새겨 보게 됐다.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고 자책하기보다는 공친 하루는 없다고, 나는 오늘도 조금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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