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한 번 들어온 음식은 먹을 때까지 머릿속을 휘저으며 좀체 나가질 않는다. 그러나 무척 애석하게도 끝은 아니다. 한 음식을 떠나보내면 그 자리에 다른 음식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잡아 언제나 먹고 싶은 것 한 두 개쯤은 머릿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 된다. 그게 나다.
며칠 전에 맥도날드 광고에 나온 슈림프 스낵랩을 보고 ‘맛있겠다’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오늘 도서관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맥도날드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지나는 길인데 유독 오늘 눈에 들어온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프로틴 음료수와 닭가슴살을 도시락으로 챙겨 왔는데. 5시간 내내...라고 하면 너무 먹보 같으니까 내내 까지는 아니고 종종 광고에서 본 화려한 색감의 바탕을 헤엄치던 슈림프 스낵랩 생각이 났다. 나는 이를 식욕이나 식탐이라는 표현 대신 마음의 소리라고 표현하겠다. 아침 요가 후 점심을 거른 후라 배가 고파 자꾸 더 생각이 났다.
결국 마음의 소리를 따라 맥도날드로 향했다. 오후 어중간한 시간에 맥도날드에 도착해 쉬림프 슈낵랩과 맥너겟을 시켰다. 소중한 단백질 챙겨야 하니까. 난 (마우스) 다이어 터니까ㅎㅎ 창가 1인석에 앉아 어떤 맛일지 대충 예상이 가지만 그래서 더 기대하며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아는 맛이다. 근데 맛있다. 슈림프 튀김은 바삭하고 따뜻하고 소스는 달콤하다.
한 입을 오물오물 씹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껴 단면을 봤다. 이 결은, 이 맛은 지나가다가 봐도 닭고기인데. 새우가 아닌데. 혹시나 해서 안을 조금 더 뜯어보아도 역시 치킨이다. 솔직히 이것도 맛있는데 그냥 먹을까 하다가 그래도 슈림프 스낵랩이 먹고 싶어서 10분 넘게 걸어온 게 아쉬워서 결국 1층에 내려갔다. 사실 오늘 먹고 가지 않으면 이 녀석은 내 머리에서 나가질 않을 테고 또 맥도날드에 오게 될 것이 두렵기도 했다.
계산대로 돌아가 직원에게 이야기하니 친절하게 금방 다시 만들어주었다. 여기까진 조금 귀찮았을 뿐이지 충분히 이해하는 바니까 괜찮았다. 직원이 죄송을 연발할 땐 나도 괜찮아요를 함께 연발했다. 2층으로 다시 올라 와 새로 받아온 슈림프 스낵랩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소스 맛이 치킨이랑 똑같네.'
'텐더 맛도 똑같..'
??
다시 단면을 봤는데 또 치킨이었다. 여기 슈림프 주문은 거의 없고 치킨랩만 많이 나가는 매장인가. 그래서 스낵랩 주문이 들어오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치킨을 튀겨버리는 건가. 이 정도면 하늘의 뜻인가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새우가 헤엄쳐서 여길 온 거라고. 치킨랩을 던져두고 한 조각, 두 조각 맥너겟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걸 또 말하면 내가 진상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넘어가는 일인데 내가 유난스럽게 구는 것일까. 새로 만들어달라고 하면 또 기다려야 하는데. 가방 속에서 녹고 있는 닭가슴살과 프로틴 쉐이크를 저버린 업인가. 치킨랩이 더 비싼데 그냥 먹어버릴까 등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어지간하면 그냥 먹었을 텐데 텐더를 먹은 탓에 치킨을 또 먹기는 싫고, 새로 만들어달라고 하면 기다려야 하니 환불을 요구했다. 결제는 신용카드로 했는데 환불은 현금으로 주어 오랜만에 동전이 생겼다. 돌아가는 내내 기어이 받아낸 2300원이 주머니에서 경쾌하게 잘랑잘랑 소리를 냈다.
안 풀리는 애는 스낵랩도 내 맘대로 못 먹는 건가. 되도 않는 피해망상과 자기 연민에 빠져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시립 도서관 내부에서는 쿰쿰한 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섞인 특유의 냄새가 난다. 열람실로 들어가기 전에 손소독제를 뿌려 손을 세척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에 섰다. 대체로 그러하듯 정수기는 화장실 앞에 설치되어 있다. 물을 마시는데 남자 화장실 안쪽에서 목에서 돌이라도 뱉어내시는 것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났다.
크으으으 퉤! 크어어어억퉤!!
그 소릴 들으며 물을 마시는데 손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손소독제의 알코올향이 퍼졌다. 비치된 작은 종이컵 한 번으론 갈증이 가시질 않아 두어 번 연거푸 물을 마시는 내내 크어어어억 소리가 들렸다. 크어어어어억 퉤! 얼굴 모를 남성이 무언갈 토해내는 소릴 들으며 소주잔 만한 작은 컵에 따른 투명한 액체를 한 입에 홀짝홀짝 털어 넣는데 내 손에선 알코올 냄새가 나서, 제법 소주 한 잔 하는 것 같은 비애를 느끼며 터덜 터덜 열람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