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재미’다. 잘 만들어진 모든 영화는 재밌고, 두 번 봐도 힘들지 않은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다. 알렉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버드맨>을, 나는 세 번 ‘이상’ 보았다.
주인공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은 과거 슈퍼히어로 영화 '버드맨'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던 톱스타였지만, 나이 60이 된 지금은 잊혀지고 있는 퇴물 헐리우드 영화배우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브로드웨이의 연극무대에 올려,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재기에 성공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건다.
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
‘나는 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 주인공 리건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극장 건물 안의 허름하고 어지러운 배우 대기실. 그 대기실 한 벽을 차지하는 거울 한 귀퉁이에 붙여져 있는 문구다. 나는 왜 이 문구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을까. 내가 나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든 그건 내가 아니다. 그와 상관없이 나는 건재하고 건재해야 한다.
Because you can’t see this thing if you don’t know how to label it.
주인공 리건이 카페에서 뉴욕 타임스의 연극 비평가, 타비사를 만난다. 그녀는 리건이 대표하는 헐리우드 상업영화 배우들을 싸잡아 ’만화나 포르노로 상을 나눠 갖고 주말에 벌어들인 돈으로 성공의 크기를 재며, 진정한 예술을 시도할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거만하고 이기적인 응석받이들이라고 폭언을 퍼붓는다. 이에 리건은 타비사의 비평에는 기술에 관한, 구조에 관한, 작품의 의도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없고, 단지 쓰레기 같은 비교에 기댄 쓰레기 같은 의견이 있을 뿐이라며 응수한다. 그는 테이블 위에 있던 꽃 한송이를 낚아채며 말한다. ’당신은 이게 뭔지도 몰라. 왠줄 알아? 당신은 낙인 찍지 않고는 이 꽃을 보지 못하니까.‘
I wasn’t even present in my own life.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나는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추락하는 불기둥 혹은 화염에 싸인 유성 이미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했다. 이카루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오르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되는 신화 속 인물. 하지만 이카루스는 자기의 의지로 살다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종말을 맞은 인물이기도 하쟎은가.
‘나는 내 인생에도 없었어’ 추락해도 좋으니 평생 한 번만이라도 진정한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은 리건. 한 번이라도 인생에 중요한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용기를 내보고 싶은 리건. 사랑하는 딸과 아내로부터 진정한 인정과 사랑을 한 번은 받아보고 싶은 리건은 그래서 자꾸 날아오른다. 그리고 매번 추락한다. 총리허설과 세 번의 프리뷰 그리고 마침내 첫 공연까지 매번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날개가 꺽이고 마는 리건이지만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있기’ 위하여 그럼에도 그는 다시또 다시 ‘비상’한다. 비상을 꿈꾼다.
That’s all our ego and self-obsession are worth.
패닝과 리패닝을 분주히 오가던 카메라의 시선이 영화의 주무대인, 세인트 제임스 극장의 깊은 통로에서 멈춘다. 30초 가까이 꼼짝 않고 카메라가 극장 뒤의 길고 좁고 어둔 통로를 응시한다. 이 정도의 오랜 정지 장면은 이 장면이 거의 유일하다. 그리고 이윽고 마지막 프리뷰 공연을 끝낸 리건의 뒷모습이 통로 안으로 들어선다. 카메라는 배우 대기실로 리건을 따라 들어간다. 대기실 안에서 주인공 리건과 그의 딸 샘이 나누는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내일 정말 오프닝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는 딸 샘의 질문에 리건이 답한다.
“이 연극은 내 인생의 축소판 같애, 뒤틀어진 내 인생의 축소판.”
버드맨이라는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의 끊임없는 자기분열적 쟁투.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넣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은 자기강박. 이에 60 가까운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없이 살아온 리건의 입에서 나온 최초의 자기성찰적 대사였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삶에 연결된 딸의 인생도 눈에 들어오게 된 걸까. 리건은 곧바로 옆에서 딸이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 뭐하고 있는 거야.
샘은 아빠랑 대화하며 두루말이 화장지에 점선을 긋고 있다. 재활원에서 내준 일종의 과제다.
“이 두루말이 화장지가 60 억년의 지구 역사래. 내가 긋고 있는 이 작은 점선 하나가 천년이고. 그리고 이 휴지 한 마디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산 시간, 15만년이지.” 어때, 우리의 자존심과 집착이 고작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지?"
고작 두루말이 화장지 한 마디. 전 지구의 역사에 비춰 하찮고 하찮은 인류의 역사. 그 인류의 역사에 비춰 하나의 점도 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역사. 그 역사 안에서 버둥대는 자아분열과 자기강박.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는 거기서 평생 헤어나오지 못하고 괴로워만 할 거냐고 샘은 강변하는 것이다. 아빠 리건에게.
“I was a shitty father, wasn’t I?”
리건의 이 질문은 내게는 “I love you, Sam.”으로 들렸다.
BiRDMAN: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 연극비평가 타비사가 리건의 연극을 보고 쓴 기사의 제목이기도 하고 영화의 부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말은 우리네 삶, 인생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미래는 물론이고 내일 일도 우린 모른다. 하지만 그 잘 모르겠는 점이 – 어디로 가야할지,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 삶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인생이라는 그 진탕길에 그래도 앞으로 한 발을 내딛게 하는 건, 그 무지, 그 불확실성이 아닐까. 모르고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인생이 주는 소중한 순간과 가치들. 주인공 리건 또한 그 수혜자 중의 한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네 번, 다섯 번, 아니 그보다 더 반복해서 자꾸 보게 될 것 같다. 나도 예기치 않게 이 영화로부터 뭔가를 발견하는 횡재를 하게 될지 누가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