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는 이렇게 연결되면 일단 관계 맺기가 수월하다. 고향과 학교가 같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단숨에 '우리'라는 단어로 묶이며 친근감이 생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실은 나도 전에는 와 닿지 않았던 이런 것들이 40대 중반이 되도록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서야 익숙하게 여겨진다.
20대 초반 함께 직장에 들어온 우리 동기들은 55명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3명이 남아있다. 그네들을 생각하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가슴한켠이 아련해진다. 연수원에서 그리고 합숙 훈련소에서의 기억과 고됬던 지리산 등반기억, 수영도 못하는데 첨벙거리며 도전해야 했던 극기훈련에 밤잠 설쳐가며 시험을 준비했던 시간들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했던 마지막 연수원날의 밤의 기억을 우리 동기들은 끊임없이 얘기했었다. 군대 다녀온 아저씨들이 그러하듯이 함께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좋은 벗으로서 충만하게 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린 그 시절에 우리는 특히 영업조직에서의 우리는 늘 알게 모르게 소리없이 피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은 하루라도 먼저 일 잘한단 소리를 듣고 싶어했고, 선배들 처럼 빨리 실적을 내고 싶어했다. 아울러 윗사람들 눈에 띄어 인정도 받기를 갈망했고 여자들이 많은 집단이다 보니, 윗분 누구와 동기 누가 식사를 했다거나 부장님이 그 직원을 칭찬하고 다닌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모두 진짜 참새처럼 쉼없이 짹짹였다. 스타 직원 한명이 나오면 나머지는 찬밥이 된다고 생각하던 그때는, 그 사실이 그렇게 분하고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시기 질투의 눈빛을 받으며 부상하던 동기들 뒤로 나머지 동기들은 앞으로는 웃으며 뒤로는 슬퍼하며 묵묵히 일해야 했다. 잘 나가는 동기들보다 더 잘해보고자 절치부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것이 좌절했을때는 펑펑 울어보기도 했다.
삶이 전쟁이었던거다.
먼저 승진한 동기를 한없이 부러워했고, 나보다 먼저 승진한 동기기 늘어가는 그때의 그 쓰디쓴 패배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되돌아 보면 , 막상 길다고 느껴졌던 그 시기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다. 나보다 잘나 보이던 동기들도 자기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역시 고단한 삶이었다는 것도 보이고. 심지어 지금은 얼핏보기엔 그들보다도 내가 잘나간다고 말하는 한 동기를 보며. 아 이런 것이었구나! 진짜 정말 별거 아니었구나!~~싶다.
우리의동기들 모임은 늘 참석율이 좋았다. 서로 다른 소식을 들고 각자의 상사들 뒷담화와 고객들과의 문제거리를 풀어내며 함께 수다를 떤다. 비록 마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을지언정 그 앞에서는 정말 둘도 없는 친구임에 틀림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할 수 밖에 여리고 여린 동기이기 때문이리라. 고달픈 막내 생활을 하며 눈물을 나누었고, 초임 책임자가 되어서는 어색함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으며 결혼하고 출산휴가를 비슷비슷한 시기에 하다보니 고민의 종류도 비슷했다. 내가 지금 겪는 고민들을 그들도 힘들게 겪고 있었으니 또한 그런 시간들을 함께 했기에 '동기'라고 하면 이젠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질투하고 패배했다는 생각을 갖을때, 마음 온전히 풀 수 없을것 같은 암흑의 그 시기라고 여겨질때 부디 잘 비켜나가기를 바란다.
동기는 친구일까? 경쟁자 일까?
결국 둘 다일테지만, 그럼에도 수없이 동기들에게 마음을 보여주길 주저하지 말자. 그 친구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잘하는 것도 있음을 깨닫고, 까칠함보다는 여유와 너그러운 어울림으로 그렇게 살아가면 어떨런지.
이젠 서로의 다름을 너무 잘알고 있고, 나보다 잘하는 부분에 큰 박수를 보내며, 혹 나보다 뒤처져 있다면 힘껏 도와줄수 있는~ 적어도 내가 아는 우리 동기들은 그런것을 아는 성숙한 친구들이기에 감히 말해본다.
나는 동기들을 생각하면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이 감싸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는 생각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