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만원이면 영어 만점 3.
“엄마 책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는 못 들고 갈 거 같아.”
문방구 앞 공중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벌써 5학년 책을 받았다. 아직 4학년 책도 다 못 끝냈지만 언제나 새 책은 기분이 좋았다. 학교도 조금은 적응이, 아니 감당이 됐고, 여전히 왕따를 당했지만 다른 반에서는 조금씩 친구도 만들어서 가끔은 함께 하교했다.
곧 5학년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순간, 패닉이 찾아왔다. 한 친구의 게임기 팩이 사라졌다. 아마 그때 닌텐도가 유행해서 무슨 치트팩 같은 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도둑이 나라고 소문이 났다. 사실 난 게임에 별 흥미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피시방도 한 번 안 가봤고, 친구들과 하는 것이 아니면 닌텐도나 플스로도 게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날 왕따시키는 카페가 생겼다.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내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봤기에 단순히 오해를 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위축된 상황에서 영어 수업이 있었고, 나는 내 교과서를 찾기 위해 사물함에 갔다. 사물함을 열고서 내가 본 광경은 차마 표현도 어려웠다. 자물쇠도 사라져 있었고, 책은 축축하거나 찢어졌거나 뭐 확실히 내가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소리로 선생님께 이르거나 화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는 도망쳤다.
화장실로 도망친 나를 본 친했던 축구부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난 울 뿐이었고, 바보같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엎드렸다. 선생님은 미덥지 못했고, 반 아이들은 무서웠으며, 부모님은 걱정됐다.
그렇게 하루를 어떻게든 버텨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신발장으로 가면서도 불안했다.
‘오늘은 신발이 멀쩡하겠지?’
다행히 신발은 멀쩡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려던 내 뒤통수를 몇 명인가 손으로 내리쳤고, 우는 것도 지쳐버린 난 가방을 던졌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 세명을 잡아서 죽일 듯이 팼다. 싸움은 잘못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사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내 울음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그 순간 날 찾아와 말려준 것은 몇 명의 친구와 다른 반 선생님이셨다. 어린 내가 생각할 수 있던 날 지키는 방법은 그저 날 괴롭히는 놈들이 다시는 근처에도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참 웃기게도 싸움을 하고 나니까 친구들이 날 좋은 놈, 착한 놈이라고 봤다. 5학년이 끝날 무렵 친구들이 내 롤링페이퍼에 적어준 글들을 보면서도 가끔 어이가 없다.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 줄 몰랐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싸움을 못하면 괴롭혀도 되는지… 참 어린애들의 생각이었겠지만 잘 이해가 안 된다.
결국 우리 엄마는 처음으로 학교에 불려 왔다. 엄마를 맞이한 건 임산부였던 내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50을 넘긴 기간제 보조 담임 선생님과 그 비슷한 또래의 다른 반 선생님이셨다. 엄마는 내가 싸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질 준비를 했다지만 다행히도 두 선생님은 아이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살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건네셨다.
“동형이가 5학년이 되면 제가 담임을 맡겠습니다.”
다른 반 선생님께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엄마에게 영어 학원을 하나 추천해 주시면서 조언을 하나 하셨다.
“동형이 성적을 봤는데 조금만 하면 될 거 같아요. 솔직히 지금이라도 영어를 가르쳐야 중학교에서 뒤처지지 않아요.”
“전 아이가 원할 때 보낼래요. 하지만 추천해 주신 학원은 한 번 알아볼게요.”
엄마의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더 말을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내가 싸운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타박 없이 그저 같이 밥을 먹고 앞으로 학교 잘 다니면 된다는 말 뿐이셨다.
나는 그 후로 약간의 독기가 생겼다. 내가 이기기로 했다면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그리고 나는 영어책을 공부했다.
더 이상 위축되고 싶지 않았고, 그 같잖은 성적으로 날 비웃던 그 아이들에게 지기 싫었다. 영어 수업 전에 나는 일주일치 수업 분량을 전부 외웠다. 발음하는 법을 단어 아래에 적어 뒀고, 해석을 문장마다 붙여 뒀다. 시험도 답을 바르듯이 풀었고, 그렇게 5학년을 버텼다. 그리고 그때의 공부는 전혀 재미가 없었다.
내게 영어공부는 학교에서의 힘듦을 어떻게든 줄이고, 얕보이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눗셈도 못해서 당시에는 수학책에 있는 나눗셈을 전부 다 외워서 시험 때마다 발랐다. 영어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혔다.
<오늘의 체크리스트>
스스로 했던 최악의 공부는 무엇이었나? 지금이라면 어떻게 바꾸겠나? 자책할 시간에 개선할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영어로 생각해 보자. 적으면 좋지만 생각으로도 충분하다. 완벽한 영어가 아닌 그냥 가능한 영어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