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만원이면 영어 만점 2.
책을 들고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붉어진 내 얼굴을 본 단비가 내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건 ‘drawn(드로운)’이라고 읽으면 돼”
단비가 내 귀에 속삭였다. 긴장이 풀린 내가 다시 자신 있게 지문을 읽어 나갔다. 친구들의 시선이 다시 책으로 돌아갔고, 곧 선생님이 손을 들고 내 목소리를 멈추게 했다.
자리에 앉은 나는 단비에게 ‘고마워’라고 입을 뻥긋거렸다.
종이 울리고 친구들이 몰려왔다. “왜 멈췄어?”, “어디서 왔어?”, “야 너 싸움 잘해?”, “축구 잘해?”
등 내 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 나는 저… 음…..”
아직 영어 수업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남자애들의 성급함은 내 답을 기다리지 못했고, 썰물이 빠지듯 달려 나갔다. 그때는 그 짧은 쉬는 시간에도 축구를 했었다. 여자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급식을 같이 먹자고도 했지만 여전히 난 굳어 있을 뿐이었다.
곧 수업종이 울렸고, 친구들이 모두 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너 영어학원 안 다녀? 다들 이 정도는 알아.”
단비가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다시 고개를 들어 고개를 저였다. 딱히 학원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전학을 다니느라 그렇게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은 점점 위축됐다. 전학을 온 이후로 몇몇 남자아이들은 날 왕따 시키듯 괴롭혔고, 여자 아이들은 꽤 친절했지만 쑥스러웠다. 어느 날엔 내 실내화에 우유가 가득했고, 어느 날엔 운동화에 우유가 가득했으며, 또 어느 날엔 내 필통 속 모든 게 흩날려져 있었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오랜만에 돌아온 것만 같이 느껴진 주말 낮에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럼 천천히 가, 지각은 해도 결석은 안돼.”
엄마가 답했다. 다시 돌아 누운 엄마가 날 빤히 쳐다봤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엄마의 질문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애들이 놀려. 돼지라고.”
내가 답했다. 통통하긴 했지만 나보다 배는 살이 찐 일진이 날 놀리는 데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동형아. 그럼 싸워. 너 싸움 잘하잖아. 엄마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제대로 못 봐주면 싸워. 싸워서 엄마 아빠가 불려 가면 네가 싸울 때까지 선생님이 뭘 했냐고. 내가 내 자식 깽값은 물어줘도 피눈물 값은 못 물어주겠다고 할 테니까. 쫄지마.”
엄마가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전학을 다니면서 어쩌면 그 어린 ‘나’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기 싫다며 더 위축된 삶을 살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당당해지기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엄마 말대로 결석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매일 6시에 일어나고서도 학교를 가기 싫어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티브이를 보며, 오전이 다 지난 11시쯤에야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문방구 아주머니와 경비 아저씨가 날 더 걱정했을 정도였다.
왜 하필 11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오전에 영어 수업이 많았다. 또 그런 상황을 마주하기 싫은 마음에 그랬던 거 같다.
학교도 싫고 영어는 더 싫었다. 그래도 난 극복했다. 어떻게 극복했을까?
<오늘의 체크리스트>
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 공포로 다가온 것이 있는가? 한 번 적어보자.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영어로 적어보자. 영어는 ‘내’ 감정에 대한 표현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