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만원이면 영어 만점 4.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초등학교 시절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떻게든 왕따에서도 벗어났고, 성적도 좋았다. 꼬아놓은 수학문제 푸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고, 영어도 전부 다 외워서 답을 적어내면 만점이었다. 그렇게 영재원 추천도 받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영재원이나 공부보다 축구와 술래잡기를 가능케 해주는 운동장이 더 소중했다.
“어, 엄마 축구하고 갈게.”
문방구 앞 공중전화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심 불안했다. 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날 당장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떤 자신감으로 놀고 싶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영재원 추천받았다고 동네방네 자랑도 하고 외식도 했는데 그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따가 비 온다고 하니까 적당히 놀다 와.”
엄마가 답했다. 중학생 때 이 날의 일을 물어본 적이 있다.
“네가 억지로 보낸다고 좋다고 공부할 인간이 아냐. 내 자식 고집을 내가 아는데 굳이 스트레스까지 줘가면서 공부 안 시켜. 공부도 유전이야.”
저 속에는 나에 대한 평가와 자화자찬이 다 들어있었다.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하고서 같이 갈비를 먹으러 간 날, 엄마는 은연중에 고집 좀 그만 부리라는 당부와 당신을 닮아서 공부를 잘하는 거라는 자화자찬을 던진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공부보다는 추억을 쌓기를 바랐지만, 당시 내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동형이 엄마, 지금은 몰라도 중학교 가면 영어학원 다녀야 돼. 안 그러면 못 따라가.”
선생님께서는 우리 엄마를 기어코 학교까지 불러 계속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영어학원에 갔다. 처음으로 영어 평가 시험이란 걸 봤고, 나이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일에 곧바로 수업을 체험했다. 뭐라고 블라블라 거리는 동급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사이로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나 자신을 스스로 멀리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웃으며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 소리에 위축된 내가 보였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결국 그날 그 반에 있던 사람 중 내가 제일 영어를 잘 사용하는 '중학생'으로 거듭난다.
“한 번 다녀볼래?”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내 의견을 물었다.
“음… 아무래도 필요하겠지?”
다니고 싶다는 마음보다 필요할 거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오래된 마음속 나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필요할 거라는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가 전날 밤 꾼 악몽을 이야기했다.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은 더 됐는데 아직도 악몽을 꾸면 학교에서 영어 수업하던 순간으로 돌아가.”
엄마가 빨간 불로 변한 신호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운전석 뒤편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근데 나이는 그대로야. 이 나이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쪽지 시험이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든 그 순간을 피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엄마의 눈이 계속 빨간 불을 주시했다.
“화장실로 도망도 치고, 꾀병을 부려서 조퇴도 해보는데 결국에는 그 책상으로 돌아와 앉게 돼.”
엄마의 시선이 잠시 핸들로 향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를 재촉했다.
“그래서 시험지를 딱 받아서 시험을 치려고 종이를 뒤집으면 식은땀과 함께 꿈에서 깨. 너무 웃기지 않아? 앞으로 영어 쓸 일도 거의 없고, 학교 갈 일은 더 없는데 아직도 영어 시간이 악몽으로 나오는 게”
엄마가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신호등이 초록색 불빛을 비췄다.
어쩌면 어린 나는 그 공포를 미리 알고서 대비할 방법을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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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영어는 좌절이자 공포였다. 그래서 내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영어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영어는 바위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걸려 넘어질지, 디디고 올라갈지는 내게 달려 있었다.
<오늘의 체크리스트>
정말로 영어가 무서운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순간의 감정이 영어를 무서운 존재로 만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