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거 들키기 싫지만…” 전편.

월 만원이면 영어 만점 6.

결과적으로 반장은 내가 됐다.


이유는 모른다. 대부분의 선거가 그렇듯, 어부지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반장이 된 날 담임선생님은 교무실로 불렀다. 첫 임무를 받을 줄 알고서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어, 동형아! 반장 됐으니까 이제는 선생님을 잘 이용해 봐. 잘해보자.”


선생님의 눈이 컴퓨터에서 나로 이동했고, 그 입에서는 뜻을 알지 못할 말이 나왔다.

그러고 선생님은 다리가 아프다며 내 등에 업혔다. 선생님을 업고서 반으로 돌아가며 몇 번이고 선생님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서로 그렇게 장난을 치다가 교실 앞에서 선생님을 던지듯 내려놓았고, 20대 후반의 젊은 체육 선생은 뜀틀에서 내리 듯 가볍게 균형을 잡았다.


“자 오늘은 반장도 뽑았고, 우리 반장은 전교 1등을 할 거니까. 우리 반도 1등을 해보자.”


옆에선 내 등을 두드리더니, 선생님은 칠판에 교과목과 공약을 적었다. 그중 가장 많은 아이들이 환호한 공약은 평균 1 등시 하루 수업 전체를 빼고서 우리 반만의 소풍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스포일러 하자면, 젊은 선생의 패기와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의 치기는 생각보다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아침 등교를 하면 평소보다 빠르게 우리 반이 정리됐고,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저마다 뭐라도 읽고 풀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가장 시급했던 영어를 위해서 매일 아침 두꺼운 단어장을 작은 메모장에 정리했다. 이는 중학생이 되기 전 겨울 방학 한 달간 빠르게 영어 문법을 훑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손바닥만 한 메모장에 매일 a부터 z까지 한 단어씩 선택해서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한 단어를 하루 종일 틈나는 대로 훑어봤다. 다만 외우지는 않았다. 정말 필요해서 외워야 하는 단어는 학교/학원 수업 때 배운 것들로만 추렸다.


그럼 외우지도 않을 단어들을 왜 정리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영어에 녹아들기 위해서였다. 매주 주말 아침이 되면 책상에 앉아 메모장을 펴고서 자주 쓰는 뜻을 가진 단어 다섯 개를 선별해 작문을 했다.




그 시절 학원에는 어릴 적부터 알던 한 선생님이 계셨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이셨다. 그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재밌었다. 영어로만 이뤄졌지만 영어를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영어에 녹아든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수업은 몇 개의 단어와 상황, 그리고 예문들을 통해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baffle이라는 단어의 뜻과 느낌, 그리고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설명을 해준 순간이다.


“'Baffle' does not mean embarrassed. It is more like numbed or unable to understand or explain something…”


그러면서 나에게만 따로 이 단어로 문장을 다섯 가지 정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영어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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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공부와 언어 공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는 모든 공부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외우기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한 번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것들이 두려워진다. 이름난 대학에 왔지만 영어로 수업을 듣고, 발표를 하고, 리포트를 쓰고, 논문을 읽는 전체의 과정에 적응하지 못해 이런 수업을 다 피해서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 아마 영어를 수단보다는 ‘점수’라는 목적으로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는 단순히 문화를 즐기기 위한 수단, 견문을 넓히기 위한 수단, 여행을 가서 길과 맛집을 찾기 위한 수단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의 체크리스트>

한 번쯤 영어에 녹아든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자. 그 순간을 찾았다면, 이유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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