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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파인더 Sep 07. 2021

자식이자 아비인 자의 심정

임플란트 대신에 틀니를 권유하던 아들

자식들은 부모의 병든 몸을 알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TVN 주말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에피소드를 보던 중이었다. 갯마을의 감리란 이름을 지닌 할머니는 치아가 많이 아팠다. 젊은 시절부터 늘 오징어 다듬는 일을 한 덕분에 아이들 대학 공부시키고 자그마한 땅도 하나 샀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그녀를 고단하게 만들었던 오징어를 맛있게 씹는 거라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오징어를 입에 대지 못한 지 여러 해가 흘렀다고 했다.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은 어미의 맘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의 하나인 식욕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애지중지 키운 큰 아들은 성공해서 잘 나가는 회계사가 되어 서울에 살고 있다. 그런 아들이 사죽을 못쓴다는 엄마표 게장을 만들어 주말을 빌어 아들을 찾은 엄마는 이번에도 아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아들의 바쁘다는 말과 함께 남겨진 서운함은 간장 게장과 함께 함께 차가운 냉장고 구석으로 숨겨졌다.


갯마을의 정의를 지키는 자

홍두식은 이 시골마을 태생의 문제 해결사 ‘홍반장’이다.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홍반장을 찾고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짠 하고 어디선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내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어느 날 두식은 감리 할머니의 치아 문제를 알아차리고는  감리 할머니를 치과로 데려간다. 임플란트를 하는 치료비가 걱정되어 치료를 포기하는 할머니에게 두식은 그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할머니에게 건넨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인 아비를 닮아 자존심이 강한 감리 할머니는 그의 호의를 호통으로 단칼에 거절한다. 결국 두식은 치과의사를 찾아가 돈을 건네며 감리 할머니의 치료를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엄마의 사랑이 배고픈 차도녀 치과의사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지 시골 갯마을 공진을 다시 찾은 혜진.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 아니라 기일이었단다. 치과의사이던 그녀는 그렇게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리어 시골마을에 치과를 개원하게 되고 감리 할머니의 사정을 홍반장을  통해 알게 된다. 그날 저녁 감리 할머니를 찾은 그녀는 감리 할머니가 차려 준 소박한 저녁을 얻어먹고는 할머니를 설득해서 그녀의 마음을 되돌린다. 감리 할머니는 혜진의 차가운 행동 뒤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과 여린 심정을 알게 되고 어느새 혜진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가득 차 오름을 느낀다.


자식의 안부를 묻는 어미와 아비가 된 자식

다음 날 아침 감리 할머니는 바빠서 통화하는 것도 힘든 아들에게 어렵사리 통화버튼을 누른다. 성공한 회계사인 아들은 여전히 바쁘며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게장은 여전히 냉장고 어느 구석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고 있다. “안 그래도 어제 홍반장이 전화 왔었어.. 엄마~ 연세도 있으시고… 임플란트보다는 틀니로 하면 어떨까? 나 요즘 큰 애 미국에서 공부시키느라 엄마도 알겠지만 돈도 많이 들도… 좀 상황이 그러네?” 감리 씨는 애써 아들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한다.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니? 나는 괜찮으니깐 너희들만 잘 살면 돼~” 그렇게 감리 할머니는 마음의 문을 또 닫는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의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그 문을 꼭 닫았다.


아버지의 우울증

나의 아버지는 경비일을 하신다. 한 직장에서 30년이 넘게 현장 기술자로 일을 하신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일을 놓지 않으시고 회사 경비원이 되어 맡은 소임에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그런 아버지도 나이 앞에선 어쩔 수 없는지 몇 해 전부터 장기능이 약화되고 그와 더불어 우울증이 도지셔서 하시던 경비일을 힘들어하신다고 한다. 날마다 쉬는 한숨소리에 함께 있는 어머니도 힘들어하신다고 한다. “그냥 편안하게 생각하시고 일 그만두시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힘들다며 형에게 전화를 하셨고 형은 아버지께 편안하게 생각하시라고 말했다 한다.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하신다며.. “어~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껏 고생해오신 아버지도 이젠 쉬셔야지… 이래저래 용돈 좀 만들어드리면 괜찮지 않을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되고 있음을 느꼈다. 홍반장이 되어버린 형과 회계사 배은망덕한 아들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나. 세상의 시간은 언제나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데 내 인생의 타이밍은 또 이렇게 방향과 속도를 달리 하는 것만 같다. 고생하신 부모님들이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작은 언덕 하나 만들어줄 수 없는 내 자신이 오늘은 밉기만 하다. 오는 추석에는 우리 삼부자 오랜만에 의기투합해서 형제애를 과시해봐야겠다. 외아들이신 아버지는 동생 같은 아들들과 함께 쌓인 우울함을 날려버리고 다시금 긍정 에너지를 얻어서 큰 병에 걸리셨으면 좋겠다.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누릴 줄 아는 큰 병에 걸리시길 바란다. ‘소확행’이라는 불치병 말이다. 덩달아 나도 그 전염병에 감염이라도 되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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