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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파인더 Sep 02. 2021

정시 퇴근(칼퇴) 이 어려운 이유

나에게 있다

사회초년생의 경험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 초년생으로 CEO라는 부푼 꿈을 안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느 신입사원이 다 그렇듯 첫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소리 들으며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그곳에서 다져진 임기응변의 경험이 있기에 사회초년생들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조직에 순탄히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단체생활을 강조하는 군 조직의 ‘함께’라는 분위기가 농축된 회사 조직은 때때로 불필요한 잔업시간을 우리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나는 첫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선임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시퇴근을 탐할 수 없는 이등병이었다. 전문적으로 도맡은 업무도 없던 나는 누군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면 그 옆에 붙어서 "뭐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를 외치는 새내기였다. 당시 회사에 입사했던 우리 동기들은 당시 신세대라 불리는 요즘 것들이었기에 업무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기존의 세대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우리 세대가 강조하는 업무능력에 대한 평가기준은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시간 내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수하여 최종적으로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가에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내가 느꼈던 조직생활의 성공적인 시작은 질보다는 양에 있었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집이 아닌 회사에서 보내느냐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느꼈다. 잦은 회식과 잔업의 무한반복은 단합이라는 핑계 아래 효율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다. 수습 기간이 끝난 어느 날, 각 부서로 흩어진 동기들이 시간을 내어 다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오랜만에 회사 동기들과 모여 앉은자리에서 우리는 각자의 부서가 지니고 있는 조직문화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니 우리의 이야기는 결국엔 늦은 퇴근 시간으로 종결되었다. 나는 로또에 당첨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정시면 퇴근하는 분위기 속에서 퇴근 후엔 여자 친구와 충전되는 삶이 있는 꿈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운이 없는 이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대리 선임과 과장 선임들 틈에 섞여 끈끈한 전우애를 과시하며 밤을 불태우는 신입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을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OECD 가입국가들 중에서도 높은 편으로 5번째로 길다고 한다. 연간 근로시간을 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는 연간 1967시간으로 멕시코(2347), 코스타리카(2209), 칠레(1999), 러시아(1988)에 이어 다섯 번째로 길었다. 2004년 당시는 얼마나 긴 시간을 회사에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그 결과에 일조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시 퇴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게 나의 노동의 시간으로 채워진 업무 결과라는 열매는 겉은 화려했을지 모르나 속은 여기저기가 비어 있는 속 빈 강정이었다.


10년 차 직장인의 경험치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10년 정도 회사 밥 먹으면 눈을 감고 있어도 오늘은 어떤 반찬이 나올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고 10년 정도 회사 밥을 먹어보니 더 빨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빨라지는 속도만큼 더 많은 일이 생겨났다. UPH라는 자동차 용어가 있다. unit per hour의 약자로 한 시간에 생산되는 자동차 대수를 의미한다. 나는 제조업의 연구원으로 입사했고 30 UPH 였던 신입시절과는 달리 10년이 지난 지금은 300 UPH가 되어 있었다. 정시퇴근은 언제나 있었지만 1년 동안의 근무시간의 합산은 언제나 동일하거나 많아졌다. 프랑스 본사 연구소에 6개월간 장기 파견근무를 떠난 적이 있었다. 현지 연구소에서 협력 연구원으로 프랑스 직원들과 함께 출근하고 회의하고 밥 먹고 또 잔업했다. 프랑스 회사였지만 오후 6시가 넘어가면 프랑스인들은 모두 퇴근하고 남은 공간은 여느 한국 연구소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연출되는 파리 속 한국 사무실이었다. 여기저기 한국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노트북의 타이핑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무실에 프랑스인 경비원이 찾아왔다. 우리 때문에 대문을 잠그지 못하고 있으니 얼른 퇴근하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타지에서도 잔업이란 것은 우리의 일상임을 보여주었다. 속 빈 강정이 되어서…


소상공인으로서의 경험

제주도로 이주해 온 나는 직장생활과는 거리가 먼 소상공인의 삶을 한동안 영위했다. 때가 되면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처럼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업무에 매진했다. 휴일도 일정하지 않았고 매일 12시간이 넘는 노동의 시간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투입한 시간이 대부분 매출로 연결되었기에 나의 업무 몰입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하면 다 내 것이 되는 마법. 또한 돈에 있어서는 급여를 받던 을의 입장에서 돈을 줘야 하는 갑의 상황에 처해보니 직장인의 시선을 넘어서는 사업주의 경영 마인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체득한 순수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경험은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러한 소상공인으로서의 경험은 대기업 엘리트 의식에 빠져 살던 나라는 껍데기에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이 언제나 공존하고 있고 나에게도 불어닥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살아있는 찐 경험이었다. 잔머리를 굴려야만 했던 과거 직장인 생활과는 또 다른 육체적 노동은 새로운 어려움이었지만 그만큼 순수했고 맑았다. 그러한 노동은 나의 정신을 티 없이 맑게 만들어 주었고 자본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아 주었다.


불혹에 찾아온 직장인의 삶

시간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다시 직장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나는 짧은 시간 내로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주위의 걱정 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잔업을 하였다. 나는 내가 가졌던 조직문화의 경험을 떠올리며 늦은 나이에 빠른 업무 적응을 위해 나의 시간을 더 소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흘러가자 업무에 대해서 빠르게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일감을 찾아다녔고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나 나는 달려갔다. 그렇게 또 한 두 달이 흘렀을 때 나에게 할당된 업무량은 점점 많아졌고 나의 일손을 필요로 한 사람들은 나의 도움에 비례하여 점점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만큼 많은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수렁과 그에 따라붙는 잔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잔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중년이 겪는 신체의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늘어만 갔고 자연스레 나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정시퇴근이란 내 삶에 존재하는가!

그렇게 나는 정시퇴근이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속한 조직문화는 정시퇴근을 장려하며 일이 없으면 누구라도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모든 직원이 업무가 없으면 눈치 보지 않고 정시퇴근을 한다. 그와 반대로 일이 많다면 자리를 뜨지 않고 잔업을 통해서 업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누가 대신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잔업을 지속해서 할 경우에 수반하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업무가 늘어날수록 나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의 일감을 찾아다니는 무모한 일은 그만두기로 혼자 다짐을 했다.


프랑스 파견근무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떠올렸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평균 노동시간이 짧다. 즉 많은 잔업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이 없다기보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의 보수를 더 주어야 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잔업을 하게 되면 급여에 책정된 시급보다 더 많은 시급이 산정되고 주말근무는 평일 시급의 1.5배가 할당되기에 잔업 및 주말 근무에 대한 정당한 사유서는 필수 사항이 된다. 그에 반해 주어진 시간에 할당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집으로 가야 할 확률이 크다. 철저한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프랑스 회사에서 근무하는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시락을 싸서 먹으며 아낀 점심시간을 업무에 투자하고 6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퇴근한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는 편안한 의자가 없다. 커피를 마시며 서서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조그만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홀짝홀짝 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 그 짧은 휴식을 취하고는 그들은 정시퇴근을 밥 먹듯 하기 위해 일터로 돌아간다. 그들은 주어진 시간을 단 1분도 허트로 쓰는 법이 없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 지 돌아보았다. 커피 한 번 마시면 10분은 기본이고 하루에 한 사람 하고만 마시는 법이 없다. 그러다 동료라도 합세하게 되면 커피타임은 자연스럽게 연장이 된다. 담배는 어떠한가! 한 사람이 담배를 태우러 가자고 하면 사람들은 노조원처럼 단결이 되고 그들은 또 한 참을 커피와 함께 비생산적인 가십들로 가득 채워진 시간을 연기 가득한 공간에 쏟아붓는다. 우리의 노동시간은 긴 건 사실이나 속 빈 강정임을 프랑스인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업무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업무에 매진했다. 그러자 나는 힘겹게 정시에 가까운 시간에 회사를 나설 수 있었다. 정시퇴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소통이란 달콤함은 업무 시간에 할애할 수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가족들과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책상 자리에 앉아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자라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8월 한 달 동안 정시퇴근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잔업이 늘어날수록 나의 마음은 시나브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세계관은 주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쉽게 묵인하지 못한다.(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인성을 보이는 사람은 예외다. 하지만 결국엔 그런 사람들의 손도 잡아주는 내가 싫다.) 결국엔 그들이 빠지는 수렁에 손을 뻗어 그들과 함께 늪에 빠지거나 그들을 힘 껏 건져내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기에 정시퇴근을 즐긴다는 건 나에게는 끝을 모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이며 풀리지 않은 무리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불완전체는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향해 있고 나의 도움을 통해서 업무가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을 도울 것임을 안다. 또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잔업은 나에게 어떠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을 것도 안다. 한 달간의 정시퇴근을 통해서 회복된 나의 신체리듬과 정신건강은 다시금 나에게 일감을 찾아다닐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고 그 틈을 타고 나에게 던져진 일감들과 함께 언젠가는 또다시 정시퇴근을 희망하는 내가 반복될 것이고 오늘과 같은 고민을 또다시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윤회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랬기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고 나의 울타리를 가꾸지 못한 채 언제나 조직에서 소외되어 왔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은 그 틈을 노리고 비집고 들어와 항상 나를 음해하고 그들의 살 길을 도모했다.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일 못하는 자들은 언제나 제거되거나 길을 잃었다. 지금까지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며 그러한 조직을 나 스스로 포기함으로 나의 승리를 자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떠난 조직에서 나의 존재는 없기에 승리 따위란 거머쥘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함을 조직을 떠나고 난 후에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밀어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우수한 업무역량을 생산성 대신에 남 험담에 쏟아붓는 세력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나 역시 예전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해 보리라 다짐해본다. 조직에서 끝까지 남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작정한다. 정시퇴근이라는 달콤함에 굶주려 직장 사수라는 줄다리기를 하며 조직 내에서 끈질기게 버티어 볼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자 하며 퇴근시간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서 나의 회사생활을 지속 가능한 승리의 자축장으로 만들기에 힘써볼 것이다.

The game ain’t over till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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