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젠가 게임이 전해준 그만큼의 깨달음
"아빠~ 저와 함께 젠가 게임해요~"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둘째가 제안을 걸어온다.
젠가 게임
젠가(Jenga)는 같은 사이즈인 직육면체의 조각(block)들을 쌓아 만든 탑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한 손으로 한 조각을 빼며, 맨 위에 다시 쌓아올리는 동작을 교대로 행하는 테이블 게임. 주로 파티게임으로 이용되고 있다. 젠가는 영국의 레슬리 스코트가 고안하여 1983년의 London Toy Fair에서 출시됐고 현재는 해즈브로 사(소재: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자회사인 파커 브러더즈가 판매한다. Jenga는 스와힐리어로 '쌓아올리다'라는 뜻이다. 기본형은 54개의 조각을 가로로 3개씩 만들어 쌓아올린 18층 탑이다. 조각은 맨 위층을 제외한 어느 곳에서 빼도 상관이 없으나, 맨 위층이 가로 3개가 되기 전에 그 바로 아래층의 조각을 빼서는 안된다. 탑을 무너뜨린 사람이 패한다. 직육면체는 조각마다 미묘하게 요철이 있어, 게임성을 더욱 높인다. 젠가에는 그 외에 조각이 마름모형으로 쌓아올려진 젠가 익스트림(Jenga Xtreme), 미니 사이즈와 대형사이즈 상품, 조각에 지령이 적힌 진실게임 젠가(Jenga Truth-or-Dare), 주사위나 카드와 함께 노는 상품 등 다양하게 변형하여 판매된다. - 위키피디아-
동일한 모양으로 제단 된 수십 개 직육면체의 나무토막들을 한 칸에 세 개씩 정렬하면 상단면이 정사각형이 되는 첫 번째 직육면체가 만들어진다. 즉 직육면체의 한 단면은 정사각형의 1/3의 면적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칸은 첫 번째 단면과 90도의 방향으로 나무토막들을 나열하여 점차 높이 쌓아가게 된다. 그렇게 쌓은 나무 빌딩이 만들어지면 비로소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된 셈이다. 딸의 게임 제의를 받았을 때 필자는 청각을 입력신호로 뇌 속의 회로를 가동하고 지난 40여 년 간의 경험 데이터를 스캔하여 해당 제안에 대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판단을 시작하였다. 해당 입력 신호는 새로울 것이 없고 딸아이의 기분이 그리 나쁜 상태가 아니며 해당 게임을 무분별하게 진행하게 되면 나에겐 필시 무료한 시간이 될 것이며...이하생략. 몇 초동안의 판단 결과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응~ 아빠가 지금은 좀 바쁜데 다음에 하면 어떨까?"라는 피드백이 입이란 프린터를 통해 정확히 딸에게 전달되려는 찰나 눈이라는 센서는 딸의 앙증맞은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을 받아들이고 만다. 그 즉시 뇌는 기존의 결과물을 출력해낼 것을 급히 중지하고는 신속히 결과물을 재구성하여 상황에 최적화된 오답을 제출한다. "그래~ 게임하자!"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나무 빌딩에서 빌딩을 지탱하고 있는 각각의 나무토막들을 조심히 꺼내어 내는 것은 나의 경험이 뇌를 통해 내린 '단순노동'이란 결과와는 달리 중년 아이의 늦깎이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흥미로운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중해야 해!' 뇌가 보내는 주의 신호에 맞추어 나의 손가락 끝의 신경다발에 전해진 촉감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고 높이 쌓인 빌딩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눈은 연신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행여나 빌딩이 꺼내어지는 나무토막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뇌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 뇌의 회로를 바꾸고 있었나 보다. 게임은 5분 정도 지속이 되었고 딸과 나는 온갖 신경을 집중하여 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탑의 높이는 기존의 30센티미터에서 40센티미터에 육박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빈틈없이 들어차 있던 나무토막들은 군데군데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키만 큰 빌딩이 되어가며 운명의 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아!" 딸과 나의 입에서 아마 동시에 터져 나온 흉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 담겨있는 의미는 0과 1만큼이나 먼 거리임을 우리 둘은 알고 있었다. 소리와 함께 나타난 의미는 나의 입꼬리를 귀를 향해 솟구치게 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딸의 미간은 삼지창이 나타났다. 그렇게 승리를 거머쥔 순간 나의 가슴은 신기한 것을 보며 놀라는 어린아이의 가슴처럼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경이로움 보다 알고 있던 것을 재차 확인하는 익숙함이 더해져 가면서 느리게 흐르기만 하던 청춘의 시간은 어느 순간 화살촉처럼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적어지고 돈과 생산성에 관련이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내가 모르는 사실이나 정보가 새롭게 등장할 때면 그것들은 나에게 호기심과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바뀌어져 가기 시작했고 기존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정보는 받아들이기 불편한 것이라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잘못되었다 하고 나무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불필요한 울타리를 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5분 동안 중년 아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아무 쓸모 짝에도 없을 것만 같던 젠가 게임은 받아들이는 순간 어느새 삶의 통찰로 인도하는 영감 어린 선물이 되었다. 그 깨달음의 약효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겨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