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파인더 Aug 13. 2021

2시간 반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물

미움받을 용기를 실천해보며

변화관리자(change manager)란 최고관리자나 부서의 장으로서 조직활동이나 그 효율성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또한 전체적 또는 부분적 조직 변혁에 주된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변화관리자는 조직혁신의 대상이 되는 계선(line)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본인이 선두에 서서 변화를 행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은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함께 협력하는 단체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 조직은 업무의 성격에 따라 명령과 보고 체계를 중요시하느냐 목적 달성의 효율성을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수직형 조직과 수평형 조직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군대와 같이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통한 정보전달의 명령체계를 기반으로 국방이라는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형성된 조직은 계선(line) 간의 정보 전달 및 보고 체계가 상당히 중요하고 모든 정보는 상부에서 하부로 하달되기에 수직형 조직이다. 그에 반하여 기술연구소나 대학교와 같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성격의 경우에는 자유롭고 개방된 분위기 속에서 각자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통해 정해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게 되기에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 전문가로 구성이 된 수평 조직이 더 유리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시 재생 사업은 노후된 도시의 활성화를 위해서 예산이 투입되고 연구원으로 임용된 조직의 일원은 담당 업무의 전문가가 되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결국엔 재생사업을 통해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활성화를 도모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로 탈바꿈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재생이란 목적을 위해 수직상하 조직은 어울리지 않으며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서 연구원 간의 시너지를 도모할 때 조직은 최고의 생산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정보통제 및 명령체계를 통한 조직의 운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후 3시 30분경 업무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팀장과 직원 두 명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받은 교육 탓에 인사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는 영혼 없는 배설을 너무나도 쉽게 토해내곤 한다. 내 자리의 파티션과 접해있는 사무실 테이블은 사람들이 회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청각을 자극하곤 하는데 조직의 장이 휴가로 자리를 비운 요즘 유독 중간관리자를 비롯한 직원들이 이 테이블에 모여 업무 외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어제 늦은 현장 미팅을 정리해야 하고 출장을 통한 미팅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동영상 파일을 되감기 해본다. 영상이 흘러가고 중요한 포인트들을 다시 감기 해가며 차곡차곡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가운데 노이즈가 발생한다.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화면 한 쪽 구석에는 자꾸 불필요한 정보들로 팝업창이 뜨기 시작한다. 카카오톡 메시지처럼... "아~ 그래서요?.. 호호." "그래서 말인데요... 그니깐요.. 호호." 그들에게는 눈앞에서 업무라는 것을 하고 있는 동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골목길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이 될 쉼터 용지의 착공에 들어가기 앞서 용지와 경계를 나란히 하는 빌라의 건물주와 경계 돌담 및 출입구 위치 선정 등을 협의하기 위해 주민협의체 위원장과 건물주 그리고 착공을 담당하는 조경 회사의 이사가 현장에서 미팅을 하였고 여러 안건들에 관한 논의와 협상을 통해 안건을 결정하는 두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내용들을 시간의 흐름과 안건의 성격에 따라 분류한 회의록을 꼼꼼히 작성했다. 연이어서 방금 다녀온 마을관리 사회적 협동조합 자문 출장을 통해 전문가 분들과의 대화 내용을 다시 복기하고 메모장에 적어 두었던 주요 포인트들을 종합하여 두 번째의 회의록을 작성하여 결재판에 담는데 걸린 시간은 연속된 2시간 30분이었다. 손목시계의 분침은 퇴근시간을 알리는 12시 방향을 정확히 향해 있었고 결재판을 관리자의 자리에 두고 돌아설 때까지 내 자리 앞의 테이블에서 피어난 2시간 30분 간의 이야기꽃은 시들 새가 없었다. 아니 그 이야기 꽃이 시작된 시점은 언제인지 나는 알 수조차 없다.


 나는 그렇게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이겨내고 업무 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다. 그리고 당당한 정시 퇴근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근무 시간에 집중하였다. 내가 선택한 것은 사무실 테이블에 팀장을 포함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가십을 나누는 2시간 30분의 편안함 대신에 미움받을 용기를 과감히 택했고 길었던 감정 소모의 터널을 지나 인고의 회의록이 담긴 결재판을 들고 웃음꽃이 활짝 핀 테이블의 무거운 공기를 헤치며 팀장의 자리에 두고 오늘 하루를 마치는 길을 선택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 후 팀장은 사무실 전 직원이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아니.. 회의록에 왜 사진을 첨부하지 않는거죠들?" 나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 건은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한 미팅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과정을 남기기 위한 일환이며 내부 관리 목적으로 작성한 회의록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첨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혹시 회의록에 사진이 무조건 첨부해야 할 이유라도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팀장이 업무기준을 명시한 어떠한 기준이나 근거를 가지고 이 부분을 요청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납득할만한 이유를 기다렸다. "그냥 사진을 넣으라면 넣으세요!" 나는 쓴웃음을 지은 채 "네~."라는 가장 쉬운 대답으로 회신했다.


 

어제 오후 팀장을 포함한 세 명의 직원이 나의 업무를 방해하며 사무실 테이블에서 보낸 2시간 30분의 결과물은 사무실 어디에도 없으며 그 에너지는 공기 중으로 사라졌을 것이며 그 시간에 포함된 국민의 세금은 고스란히 낭비 혹은 비효율이라는 단어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조직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그 시간들은 넘어갈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최소한의 결과물인 회의록을 남겨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지식인들이다.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나의 2시간 30분의 업무의 결과물을 근거도 없는 명령으로 일관하는 관리자가 있는 이 조직은 조직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조직 내부는 관리자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방울을 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로 득실 될 것이 뻔하다. 또한 이러한 조직 문화는 신규 직원이나 열정을 가지고 도시재생을 위해 조직에 들어온 사람들의 업무 몰입을 방해하고 조직문화를 말살하며 '무임승차' 내지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통해 조직 내부에 퍼진 암세포를 키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조직 속에서 희망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열정을 태우며 살아가고 있다.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외국계 회사 5년 만에 해외 첫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