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반 밥반 가요삔또(Gallo Pinto) 체험기
2024.08.15. (목)
한국은 광복절, 코스타리카는 어머니의 날(Día de la Madre)이다. 우연히 두 국가의 공휴일이 겹쳤다. 어버이의 날도 아니고 딱 어머니의 날인 것도 신기하고 며칠 없는 공휴일 중 하나로 이렇게 크게 축하하는 것도 신기하다. 점심시간 즈음 마주친 집주인아저씨가 커피를 내려주면서 코스타리카 전통 아침식사인 Gallo Pinto를 해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뭔지 전혀 모르지만 배고픈 마당에 코스타리카 전통 음식이라니 그저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받게 된 콩밥과 짭짤한 계란말이.. 이제와서 콩을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먹자니 이게 한국 콩밥이랑 달리 밥보다 콩이 더 많은 수준이었다. 최대한 콩을 걸러서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 콩이 입에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고 그냥 눈 감고 먹기 시작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땐 콩은 무슨 밥알도 거의 안 먹었는데 역시 밖에 나오니 콩이든 밥이든 주어진 것에 그저 감사하다.
그리고 드디어 마시게 된 첫 코스타리카 커피! 처음 코스타리카로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1) 어딘지 전혀 모르거나(나는 여기에 속했다) 2)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3) 축구 선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커피에 대한 기대가 크면서도 나는 어떤 음식이든 음료든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축에 속해서 내가 정말 그 맛을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역시!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냥 진하고 따뜻한 커피였다. 여기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꼭 설탕을 같이 내주던데 기본 커피가 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며 집주인아저씨가 오늘 같이 시내 혹은 근처 산 중에 가보자고 이야기하더니 결국 뒤늦게 오늘 공휴일이라 어딜 가도 사람이 많다네~하시길래 그냥 혼자 집을 나서서 어제 못간 근처 스타벅스를 향했다. 굳~이 스타벅스를 찾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언니들에게 요 며칠의 안 좋은 마음을 징징거리니 근처에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처럼 한국에서 익숙하게 느끼던 공간을 가보면 마음이 좀 낫지 않을까?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꼭 집 앞의 스타벅스에 앉아 재택근무든 다른 일이든 하곤 했기 때문에 조금 거리가 있지만 스타벅스를 찾아 근처에 나와봤다. 메뉴 주문하는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그저 매일 마시던 바닐라크림콜드브루 같은 것이 있어서 주문했는데 하필 콜드브루가 없다고 본인이 아메리카노로 비슷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다행히 영어로) 또 앉아서 노트북을 피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확실히 조금 나았다.
인터넷을 연결해서 한창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우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비가 세차게 오는데 지금 당장 우산이 없는 것보다 집에 창문은 닫고 왔는지 걱정이 되었다. 예보를 보니 비는 한두 시간 뒤에 그칠 것 같긴 한데 방 걱정에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비가 조금 잦아든 틈을 타서 후딱 집까지 다시 뛰어왔는데 다행히 창문은 닫혀있었다. 조금 누웠다가 이번에는 우산을 챙겨서 내일부터 출근할 사무실 근처에도 가볼 겸 저녁 먹을 것도 사볼 겸 집을 나섰다. 사무실은 숙소에서 10분 정도로 가까웠고 바로 앞에 Fresh Market이라는 편의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샐러드와 볶음밥, 빵과 바나나를 사 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깨달았다. 볶음밥 위에 까맣게 보였던 것이 고기가 아니라 콩 페이스트였다는 것을...
저녁으로 또 콩 페이스트와 볶음밥을 먹을 뻔했으나 집주인 아저씨가 같이 근처 식료품점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사온 샐러드에 고기를 구워줘서 콩을 피할 수는 있었따. 그치만 벌써 요 며칠 이곳에 와서 먹은 콩이 내 한평생 먹은 콩의 양보다 많은 걸로 미루어보아 여길 떠날 때 즈음에는 콩을 즐겨 먹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와중에 샐러드에 뭔가 넣기 전에 맛을 보여주셨는데 이건 도저히 못 먹겠는 표정을 숨길 수 없어서 눈치채고 빼주셨다. 빨미또라고 무슨 야자나무에서 나오는 무언가라고 하는데 너무 녹진하고 시큼했다. 콩이든 빨미또이든 결국 사랑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맛들을 많이 찾아가는 과정이 배고프지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