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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5. 진실/거짓: 중남미 사람들은 파마를 안한다

엄마 보고싶다

by 에스더

2024.11.26. (화)


어제 받은 충격으로 아침에 계란을 삶아서 나왔다. 원래 불닭 소스나 칠리 소스 없이 삶은 계란은 안 먹는데.. 집에 있을 땐 엄마가 반숙으로 맛있게 쪄줘도 잘 안 먹었는데 엄마 딸은 반숙으로 계란을 삶는 재주조차 없나 보다. 아주 푹 삶아져서 퍽퍽해진 계란을 아침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연구소에 오니 사람들이 다들 오랜만에 왔다고 쉬다 왔냐고 물어봐줬다. 그리고 여전히 모두가 크리스마스 때 한국에 돌아가는지, 코스타리카에 있는다면 우리 집에 와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아직 11월인데 그 사이 복도에 크리스마스 전구도 달고, 트리도 세우고, 금방이라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연구실 분위기와 상관없이 나는 당장 내일 스페인어 시험을 봐야 했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오랜만에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왔다. 시험이 코앞인데도 과거시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줄 몰라 발등이 뜨뜻하면서도 동시에 공부하기가 싫었다. 지난 중간고사 때는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서, 잘 보고 싶은 마음까진 없어도 몰랐을 때 선생님이 충격받을 내용 정도는 공부를 했는데, 지난번에 보니 막상 공부한 거랑 크게 관련 없는 스페인어 전반적이 내용이 출제되길래 더욱 의욕을 잃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하고 싶었던 파마를 열심히 찾아봤다. 특히 이번주 금요일이 블랙 프라이데이라 여기저기 프로모션들을 많이 해서 빨리 예약해서 시험 끝나고 새롭게 머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머리를 쫙쫙 펴주는 거나 발리아쥬 염색만 가득하고 이상할 정도로 파마를 하는 곳이 없었다. 혹시 파마 permanente라는 단어를 여기서는 다르게 사용하나 싶어 rizado, ondulado 다양한 키워드로 찾아봤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 태어나서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에게 혹시 이곳 사람들은 파마를 안 하는지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했다!


중남미에서 파마하는 한국인의 영상까지 찾아봤는데 댓글에 여기 파마하는 곳이 잘 없는데 너 잘 찾아갔구나! 하는 스페인어 코멘트가 있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 재미있는 사실을 (전) 미용사 엄마에게 전하니 엄마가 너무 신기하다며 와서 엄마가 직접 파마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해본 적이 없다. 거짓말이고 딱 두 번 가봤는데 시드니에서 일하는데 머리끝에 탈색한 부분이 신경 쓰여 자르고 싶은데 엄마가 없으니 한 번 가봤고 또 재작년 여름에 히피펌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팔 아프다고 해서 스마트 워킹 데이 + 행복 2시간을 써서(슬프게도 추억의 단어들이 되어버렸다.) 오전 근무만 하고 히피펌 전문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지만 엄마 막상 한국에 있을 때도 파마 팔 아프다고 안 말아주셨잖아요? 그렇지만 한국 떠나기 전날, 가서 아프기라도 하면 머리고 뭐고 다아 귀찮아진다며 엄마가 머리를 짧게 잘라주셨다. 나름 대기업이라고 보내놨더니 관두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이름도 낯선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 가겠다는 딸 아프기라도 하면 머리가 거슬릴까 잘라주던 그때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 뜬금없이 마지막 출근 날 코로나에 걸리면서 골골대며 출국준비를 했으니 아마 더 마음에 걸리셨겠지. 아침 계란부터 저녁 파마까지 아침저녁으로 엄마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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