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쌤이랑 쌤 동생이랑, 쌤 동생 딸이랑 친구 먹기
2024.11.28. (목)
시험 끝! 뭐 며칠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시험이 끝났다는 후련함만 날름 챙기고 싶은 도둑놈 심보다. 오늘은 마지막 남은 oral 시험만 봐서 40분 만에 수업이 끝났다. 그래서 처음으로 12시 요가 수업에 갈 수 있었다. 수업을 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가 지난번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 몇 명이 네일아트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네일을 하고 싶던 중이라 그중 가장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지난번에 만난 에스더인데! 혹시 네일을 하냐 물어봤다가 당장 오늘 오후에 네일을 받기로 했다. 아니 아직 디자인도 정확히 못 정했는데.. 잡생각을 없애야 하는 요가 시간에 어떤 네일을 할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친구집으로 향했다.
사실 샵이 아니라 그저 가정집이라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고 집에 동생과 동생 딸이 있어서 당황하긴 했지만!(나중에 어머니, 아버지도 합류) 막상 와보니 네일 받으러 온 느낌보다는 친구 집에 놀러 온 느낌이었다. 그래서 먼저 커피를 마실 때 같이 먹을 것을 사러 가자고 앞에 작은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하나를 사 왔다.(요즘 간식을 끊어서 안먹으려 했는데 예의상 하나 먹었다가 엄청 맛있어서 깜짝 놀람!)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과자를 먹으며 한참을 대화하다가 네일을 하러 갔는데 먼저 11월에 했던 네일을 제거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제거드릴이 없어 용액으로 젤을 불린 뒤에 하나하나 밀어내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한 시간이 걸렸나, 결국 최종 시안을 못 정해 가서 이것저것 레퍼런스를 여러 개 들고 갔더니 그걸 각각 하나씩 한 손톱에 하다가 세 시간이 더 걸렸나, 아무튼 약속 시간은 2시였는데 완성본 사진에 찍힌 시간을 보니 6시가 가까웠다.
뒤늦게 얼마를 보내면 될지 물어보니 지난번 네일했던 곳의 반값 수준이었다. 아니 이렇게 오래 시간을 들여해 줬는데 그냥 예의상 받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재료값만 받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저녁까지 먹게 되었다. 닭고기를 저녁으로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네일을 해준 친구의 여동생이 하루 종일 만들고 있는 드림캐쳐에 관심을 가졌더니 같이 만들어볼래? 했다. 그래서 하나 붙잡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저녁이 도착해 먹고 또 한참을 만들다가 한밤중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에 그 동생의 딸이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거나 말을 걸고는 했었는데 자기 오늘 시험 봤다고 시험지를 보여줬다. 역시 스페인어 3개월차와 7년차 사이에는 큰 갭이 있어서 초등학교 시험지지만 전혀 풀 수 없었다. 그래서 오 정말 대단하다! 고만해줬다. (근데 이 딸 너무너무 예쁘다. 나중에 어떻게 클지 궁금하다.)
근데 커피를 마실 때 꼭 이 일곱 살짜리 친구에게도 커피를 마실지 물어보는 게 신기했다.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신기한데 다들 아주 어릴 때부터 커피를 마셨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카페인을 거의 접해본적이 없었는데, 커피 맛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더위사냥을 녹여서 마셔보곤 이런 맛이군 했다가 성인이 되고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뒤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커온 나는 아이에게 커피를 권하는 것도 신기하고 또 그 아이도 커피의 맛을 안다는 게 신기했다.
거의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지금까지 알고 지낸 친구들과 달리 오늘은 100% 스페인어로만 대화해서(내가 이 부분에서 손톱 디자인 컨트롤을 조금 포기해 버린 것도 있다.) 쉽지 않으면서도 또 3개월 배운 이 실력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같이 피크닉도 가고 어디에 뭣도 먹고 다음 주에 무슨 영화를 함께보고, 이런 계획들을 세운 것 같았는데 뭔지도 모르고 좋다, 정말 좋다! 하다 와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 취해 오는 길에 태워준 우버 아저씨랑도 한참을 대화했다. 그냥 스페인어 수업 안 들으니까 신난 학생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