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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1. Olla de carne 만들기

또르띠야까지 직접 만드는 명예 코스타리카인이 되어

by 에스더

2024.12.02. (월)


지난주 금요일 눈물 그렁그렁 스페인어 수업 종강을 하고 긴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 바로 그룹 수업 개강을 맞이했다. 비슷한 시간대, 같은 선생님, 그래도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칠레에 계신 한국인 동료분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다른 나라에 계신 한국인 분들은 나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셔서 스페인어 수업도 먼저 듣기 시작했고 특히 남다른 스페인어를 자랑하는 칠레에서 살아남으시면서 엄청난 스페인어를 습득하셨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인 동료 앞에서 스페인어를 하는 게 약간 쑥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주부터 선생님에게 걱정을 늘어놓다 오늘 첫 수업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두 명이라 부담이 1/2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100에서 0으로 줄어들었다. 우선 칠레 동료분이 나처럼 쭈글쭈글하지 않으시고 모르겠는데? 하면 선생님이 곧잘 답해주셨다. 아마 나랑은 계속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라 내가 모르면 너 이거 예전에 배웠는데 왜 몰라! 스탠스이신데 칠레분은 지금까지 다른 동료 선생님이랑 수업을 하다 와서 확실하지 않으니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동료분이 선생님이 질문하는 게 어려우면 질문은 질문으로 막자! 전략을 전수해 주셨다.


수업이 끝나고 지난주 네일을 받다 친해진 친구의 집에 왔다. 원랜 위키드를 같이 보자고 했는데 미리 물어보니 더빙판을 볼 것 같아 지난주 금요일에 자막 버전을 보며 예습까지 해왔다. 그렇지만 결국 Robot salvaje이라는 한국어로 와일드로봇 영화를 보게 되었다. 먼저 도착해서 나에게 arroz(밥) con(과) pollo(닭고기)를 먹고 싶은지, olla(냄비) de(의) carne(고기)를 먹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전자는 심지어 교회에서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 후자는 최근에 날이 좀 추워지니 사람들이 계속 먹어봤는지 물어보던 음식이라 궁금해 olla de carne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조금 먼 길을 떠나 장을 보고 돌아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야채에 향신료와 고기를 넣고 찜솥에 한참을 끓이면 되는데, 그중 chayote라는 처음 보는 과일 혹은 채소를 손질한 뒤 손의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리 손을 닦아도 물든 것이 지워지지 않고 손이 뻣뻣했는데, 친구들이 웃으면서 수세미와 퐁퐁으로 내 손을 설거지하듯 닦아주니 나아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chayote에서 나오는 산성 성분과 천연 라텍스 때문이라고 한다.)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걸려서 그 사이 12월의 음식 tamal과 과일들을 먹었다. 과일을 먹는데 그중 처음 보는 Granadilla라는 과일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 있는 동네 이름이랑 같아서 처음에는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약간 보기 힘든 돌기도 있고 그 안에 과육이 조금 붙어있는 검은색 씨를 먹는 거라 해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막상 먹어보니까 맛이 있었다!


그 사이 친구 동생 딸이 집에 도착해서 같이 영화를 보다가 완성된 olla de carne를 먹었는데 한국의 국밥과 같이 몸과 맘이 따뜻해지는 요리였다. 그리고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데 당연히 원카드일 줄 알았는데 엄청 다양한 카드 게임을 알려줬다. 드디어 초등학생 때 윈도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카드게임 원리를 이해했다. 친구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여러 카드 게임을 배우고 가족들끼리 해왔다고 했다. 예상치 못하게 내가 계속 게임을 이겨서(!) 그만두고 다 같이 커피에 먹을 치즈 또르띠야를 만들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는데 왜 또르띠야를 만드는지는 이해는 안 갔지만, 또 열심히 동글동글 만들어서 찍어 눌러 여러 장 만들었다.


저녁에는 라틴댄스 체험 수업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같이 만든 olla de carne에, 치즈 또르띠야에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 좋아했던 과자까지 미리 준비해서 가득 챙겨줬다. 그리고 우버를 잡으면서 장소를 보더니 본인들도 여기서 몇 달간 춤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뭔가 현지인 인증받은 좋은 곳을 찾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춤을 췄지, 엄마 뱃속에서부터 춤을 췄지 하는 말들에 다시 한번 춤 수업에 대한 긴장도가 올라갔다.


도착한 댄스 교습소에서 수업을 듣는데 자꾸 여기 와서 이렇게 춤을 추고 있는 이런 내 모습이 웃겨서인지, 재미있어서인지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배운 것을 파트너와 함께 출 때는 처음엔 아주 부담스러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대학에 다닐 때 여러 중앙 동아리들을 오가다가 댄스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첫 시간에 우연히 같은 과 선배를 마주쳐서 함께 파트너로 춤을 추다가 그 길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동방에 가지 않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선배는.. 학기말에 무대까지 오르신 완성도 있는 멋진 동아리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하다 보니 이것도 적응돼서 그저 스탭 안 꼬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90분의 수업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나도 이번엔 완성도 있는 멋진 춤 생활을 해보기 위해, 수업 후 정식 등록을 하고 내일 또다시 돌아와 수업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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