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2024.12.03. (화)
아침부터 비가 왔다. 어제 친구가 챙겨준 olla de carne에 고구마와 닭고기를 추가해서 끓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국물을 마셨다. 한 손으로는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기다가 비상계엄 관련 이야기를 보았다. 처음에는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는데 유튜브에 들어가 보니 실시간으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비상계엄? 한국사 공부를 할 때 책에서만 보던 이야기다. 어제 친구들이랑 한국이 요즘 이상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잠들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모두 안전한 것을 확인한 이후 동생이 걱정되었다. 동생은 의료 파업으로 벌써 1년간 대기하다가 결국 내년 초 입대를 결정했는데 갑자기 일이 터지니 집 문제 등 겨우 하나씩 결정하고 처리한 뒤였는데 또다시 모든 게 혼란이었다. 사무실 슈퍼바이저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괜찮은 것인지 연락을 주셨다. 코스타리카 뉴스에서 한국 이야기를 보는데 어째서 이런 내용.
스페인어 수업 땐 또 선생님과 비상계엄 이야기를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좋은 이미지의 나라로 성장해 왔다고 믿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여행 위험 국가가 되었다. 코스타리카에 간다고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갖고 이 나라를 잘 떠났다고 스페인어 공부 열심히 해서 쭉 있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속상했다. 다행히 수업을 마치고 나니 비상계엄이 해제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도 아침에 알게 모르게 피곤했는지 수업이 끝나고 동생이랑 또 수많은 옵션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금세 라틴댄스 수업에 갈 시간이 되었다.
어제 클래스는 아예 처음 시작하는 날이라 무리 없이 따라갔는데 오늘 들어가는 수업은 이미 지난달에 시작한 반이라고 해서 또 긴장을 하고 들어갔다. 그만큼 이미 진도가 나가서 다른 분들은 멋진 살사 춤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래도 다행히 옆 연습실에서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그런 춤은 아니라 안심했다. 오늘 수업에 오는 길에 문득 허전한 팔이 느껴져 보니 팔찌가 없어서 가방에서 급히 찾았다. 팔찌를 언제부터 안 찼는지 떠올려보니 지난번 주짓수 수업 때 대련 전에 다친다고 시계도 팔찌도 다 빼고 오라 하셔서 빼서 가방에 넣어뒀던 것 같다. 그렇게 주짓수에서 도망 와서 라틴댄스 수업 전에 팔찌를 다시 끼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는데!)
오늘도 역시 파트너와 연습하며 내가 실수로 발을 밟을 때마다 너무 죄송했는데, 동시에 주짓수 수업 때 밟히던 던 것보다는 낫다!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사실 밟힌 건 아니고 깔아뭉개지는 거다.) 그렇지만 주짓수도 좀 더 스탯이 쌓이면 꼭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처음 불편했던 것에 비교하면 파트너랑 춤을 추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그즈음 선생님이 여자들은 눈을 감고 추라고 했다. 그거 좀 불법 비슷한 것 아닌가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편해서 자꾸 눈을 뜨니까 선생님이 옆에서 계속 감시하면서 눈 왜 자꾸 뜨냐고 혼내셨다. 엉엉 동양유교걸은 여러모로 좀 불편해요. 그렇지만 오늘도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칠레 동료분과 비디오 콜을 하면서 스페인어 과제를 함께하고 남은 시간에 콜롬비아에 계신 동료분도 콜에 함께 참여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콜롬비아에 계신 분도 프로젝트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계셔서 여러모로 공감이 많이 된다. 숙제를 마치고서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갑자기 내년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져서 좀 충격을 받았다.
올해 초부터 한 두 살 언니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또 일 년이 지났으니 우리 나잇대로 내려왔나 보다. 여러 친구들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아 직접 참석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남기면서도 속으로 너무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내 눈엔 아직 다들 아가들 같은데 언제 어떻게 이렇게 인생의 큰 결정을 하고 어른들의 일 같이 느껴지는 것들을 척척해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건지 생소했다. 그중 몇 명의 언니 오빠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하니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당장 나에게도 있을(지도 모르는) 내 일인데도, 몸이 멀어서인지 그냥 내가 늦게 크는 것인지 너무 먼 이야기처럼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