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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6. 갈라파고스 4일차: 수영복 자전거 라이딩

갈라파고스 오징어게임2 스페인어 시사회

by 에스더

2024.12.27. (금)


지난 며칠간 일찍 일어나서인지,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는데도 눈이 일찍 떠졌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사진 좀 보내보라는 엄마 말이 떠올라서 밖으로 나와 해먹에 누워 엄마아빠랑 페이스톡을 했다. 엄마는 예전부터 해먹을 엄청 좋아하는데 해먹에 누워 전화를 받으니 아주 부러워했다. 예전에 캄보디아인가에서 엄마를 위해 해먹을 사왔는데 집에 해먹을 고정해 놓을 수는 없으니 서랍장 깁숙한 곳에 들어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엄마아빠에게 사진을 공유하면서 어제 바다에서 본 바다 생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서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이야기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갈라파고스 꼭 가라!파였기 때문에 아주 흐뭇해 했다. 그리고 항상 내가 우리 가족의 대표로 나가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고 오라고 했다. (제가 대표라고 그렇게 다 하고 다니면 우리 가족이 다 한 것으로 되는 것인가요..?)


그렇게 한참을 엄마아빠랑 떠들다보니 아침해가 뜨고 동료분들도 슬 일어나신 것 같아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무런 일정이 없어서 (다른 날도 따로 일정이 있진 않긴 했다.) 오전 내내 늘어지다가 문득 늘어져도 바다뷰에서 늘어져야겠다! 싶어서 혼자 준비를 해서 나와 해변가에 누웠다. 누워서, 갈라파고스에서 꼭 해야지 리스트 중 하나였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일할 때도 처음 가서 정착한 뒤에 같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그 때가 2019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불어 정신을 반 놓고 내용을 적어내렸다. 그러다 다른 동료분들도 바다로 나와서 함께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이사벨라 섬은 본토랑 가장 멀어서인지, 공항이 없는 섬이라 그런지 세 개의 섬 중 이사벨라섬에서는 괜찮은 음식을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어제 택시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곳에 왔는데 가장 기본적인 파스타가 2만원이 넘었지만 주문한지 30분 뒤에야 차게 식은 스파게티를 받아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음식을 서빙하시는 분도 음식을 하시는 분도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 아주 행복해보여 좋았다.) 아쉽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먹은 뒤엔 또 빵집에 들려 빵을 잔뜩 샀다.


오후엔 급 자전거를 빌려 통곡의 벽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제 괜찮은 자전거를 찾기 어려워서 포기했는데 오늘은 우연히 원하는 가격에 괜찮은 컨디션의 자전거 대여샵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사실은 브레이크도 한 번에 잘 안되고 기어나 작고 큰 이슈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흐린눈하고 빌려버렸다. 그리고 아저씨가 브레이크? 쓸 일 별로 없어~하하 하셨다. 하하! 자전거를 빌리니 여기저기 다니기 훨씬 수월했다. 먼저 집에 들려 짐을 전부 백팩에 넣은 뒤 다시 출발했다.


사실 이 섬에서도 인터넷이 숙소 외에서는 안터져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다녀야했는데 처음엔 Wall of tears의 tear눈물을 스페인어로 몰라서 dónde está (어디에 있니) duro (벽) de 눈물 흐리는 척..하면서 길을 물었다. 바닷가를 따라 쭉 달려야했는데 이게 낭만적이면서도 동시에 모래에 자꾸 바퀴가 빠져서 계속 넘어져 너무 위험하기도 했다. 이래서 아저씨가 브레이크 쓸 일이 없다고 한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바닷가 구간을 지나 제대로된 숲속 구간이 나왔다.


자전거를 찾을 때 산악 자전거처럼 생기지 않은 그냥 따릉이st 자전거를 찾으려고 하는데 전부 험하게 생겨서 왜 그런가 했더니 가는 길이 그런 따릉이 자전거로는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 즈음 도착했을 때, 긴 바지가 너무 더웠다. 이따 다녀와서 바다에 들어가려고 안에 수영복을 입고와서 결국 옷을 벗고 수영복만 입고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처음엔 민망하다가 나중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영복+자전거를 타게 되었는데 그러다가도 동양인을 마주치면 괜히 민망해졌다. 아마 한국인을 마주쳤다면 창피해서 엉엉 울었을지도.


꽤 많은 언덕들을 타고 올라와 통곡의 벽에 도착하였는데 생각보다 기대했던 것만큼 엄청나지는 않았다. 이사벨라섬은 원래 죄수 수용소로 쓰였기 때문에 탈옥을 못하게 벽으로 막아둔 것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죄수들에게 의미 없는 노역을 시키기 위해 이렇게 돌로 벽을 쌓도록 한 것이었다. 사진만 찍고 다시 돌아오는데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서 그제야 오는길이 모두 오르막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곳까지 온 목적 중 하나는 땅거북이를 가까이서 보는 것이었는데 지천에 널린 이구아나들 외엔 거북이들을 쉽게 볼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너무 너무 좋아하는 나무 터널이 아주 많고 또 그 사이를 내리막길로 슝슝 자전거로 지나다닐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중간에 이구아나들의 짝짓기 해변이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 아까 사온 빵들을 먹으며 바다를 구경했다. 앞에 작게 갇혀있는 맑은 물에 소라게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엄청 많아서 한참을 앉아 구경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시 돌아와서 그제 갔던 스노쿨링 스팟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바다사자와 수영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제 한 번 어제 한 번 들어가봤다고 그세 좀 두려움이 사라져서 금방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하며 다녔다. 그리고 꽤 멀리 나와서 반대편까지 갔는데 그 사이 이미 반대편을 찍고 오신 칠레 동료분이 바닥에 있는 엄청 큰 거북이 위치를 알려주셔서 오늘도 거북이와 함께 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펭귄을 보고 바다사자들이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뒤에 그대로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시내로 돌아왔는데 정신차려보니 나만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바닷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충 옷을 안입고 다니지 않나? 부산만 가도..? 갑자기 민망해져서 수건으로 돌돌말아 자전거를 타는데 자꾸 흘러내려서 자전거 타랴 수건 붙잡느랴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자전거를 반납하고 저녁으로 피자랑 볶음밥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씻지도 않고(나만 안씻음 흐흐) 둘러 앉아서 오징어게임2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기간중에 저녁마다 오징어게임을 스페인어로 틀어놓고 한국어 자막으로 봤는데 같이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분들이랑 이러고 있으니까 중간 중간 이상한 포인트에서 웃겼다. 아빠는 한국에서 오징어게임을 보다가 다음날 이어서 다시 트니 중간에 스페인어로 음성이 바뀌어서 놀랐다고 했다. 아무 계획 없이 쉬어가는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또 많은 것을 했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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