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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7. 갈라파고스 5일차: 스페인어로 전화걸기

이사벨라 섬-산타크루즈 섬-산크리스토발 섬 이동

by 에스더

2024.12.28. (토)


오늘은 이사벨라 섬을 떠나 마지막 섬인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향하는 날이다. 사실 이사벨라 섬에서 바로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갈 수는 없고 중간에 산타크루즈 섬을 꼭 경유해야 하는데 그래서 이동하는 배값만 총 64불이 든다. 이 섬으로 들어올 때는 아침 7시 배라 6시까지 선착장에 가서 기다렸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시간일 줄 알고 어제 선착장에 갔을 때 집에 5시 40분까지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자꾸 아저씨가 줄이 길다며 5시 20분에 택시를 보내겠다고 해서 너무 이른데 그럼 30분은 안 되나요? 하다가 중남미답지 않게 일찍 일찍 마인드가 이상해서 배가 떠나는 시간을 다시 여쭤보니 우리 생각보다 한 시간 빠른 6시 배였다. 헉 그럼 4시 40분 택시 보내주세요! 했지만 아저씨가 5시 20분이면 충분하다 치카스~해서 우리의 배값 64불*3인의 돈을 굳혀주셨다.


4시 반에 일어나서 짐을 대충 싸고 어제 먹다 남은 피자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선착장에 나와 수상택시를 타고 페리에 탔는데 어쩌다 2층 가운데 자리에 혼자 앉게 되었다. 처음엔 오 바다 구경하면서 가야지 싶었는데 막상 비닐로 앞이 막혀있고 머리를 기댈 수 없는 곳이 없어서 심심하고 불편한 두 시간이 되었다. 페리는 6시 정각에 출발했고 8시에 정확하게 산타크루즈 섬에 도착했다. 처음 에콰도르 본토에서 산타크루즈에 왔을 땐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이 들었다. 문명에 가까워진 기분. 크림브륄레가 9불밖에 안 해? 신난다! 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여러 디저트까지 먹었다.


디저트를 먹으면서 내일 투어를 위해 섬에 있는 투어사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땐 전화할 생각은 절대 못했는데 생각보다 자리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 마음이 급해지고 또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 스페인어로 전화까지 하게 되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스페인어로 전화를 했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세 명의 자리를 갖고 있는 투어사를 겨우 찾아두고선 한참 기념품 쇼핑을 위해 돌아다니다가 수산시장을 찾았는데 오늘은 시장이 안 서는지 사람들이 설명해 주는 곳으로 가도 물고기들을 파는 시장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점심으로 새우 파스타를 먹었다. 그냥 새우가 올라간 평범한 파스타였는데 13불에 파스타에 레모네이드를 주다니.. 산타크루즈섬이 짱이다 하면서 엉엉 울며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에 짐을 맡겼던 곳으로 가서 짐을 다시 찾았다. 원래 같으면 오기 전에 산타크루즈 섬을 경유할 때 짐을 어디에 얼마에 맡길 수 있는지 열심히 블로그를 찾아봤을 텐데 애초에 인터넷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라 그냥 와서 아무 데나 들어가서 짐 좀 맡아줘! 아니면 어디 맡길 수 있는데 좀 알려줘! 했더니 그냥 여기 놓고 가라고 하셨다.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그냥 놓고 다녀오래서 좀 의심했는데 그저 친절한 분이셨다. 그래서 팁을 조금 드리고 짐을 챙겨 나와서 다시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향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그렇게 또 일련의 과정(선착장에서 우리 이름이 올라와있는 회사 찾아서 목걸이 받기-줄 서기-수상택시 타고 1불 내기-큰 배로 옮겨 타고 2시간 이동하기-다시 수상택시 타고 1불 내고 선착장 도착하기)을 거쳐 산 크리스토발 섬에 도착했다. 산 크리스토발 섬은 도착하자마자 최애 섬으로 등극했다. 1. 최초로 입도비를 안 받고! 2. 바다사자가 역대급으로 많고! 3. 가장 문명에 가까웠다. 인터넷은 여전히 안 됐지만 귀여운 가게들과 카페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 섬들에 비해 가격이 조금 더 합리적이었다.

먼저 도착해서 아까 오전에 계속 이야기하던 투어사에 가서 내일 키커락 투어와 내일모레 360 투어 금액을 지불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예약을 진행한 사람과 친해졌는데 자꾸 실없는 농담을 해서 나중엔 좀 불편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그냥 집 앞에 있는 6불짜리 아사도를 먹었는데 그냥 고기 구워주신 건데도 갈라파고스에 와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isla yogurt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내가 고른 마라쿠쟈 (패션프루츠) 요거트와 pan de yuca 너무 맛있어서 신나 버렸다. 한국에선 이런 음료 마시면 하나 다 못 마시는데 아주 금세 전부 먹어버렸다. pan de yuca는 yuca라면 그 고구마 비슷한 그거잖아? 해서 경계했는데 알고 보니 맛있는 작은 치즈빵이었다. 콜롬비아에서도 먹는 빵이라고 하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콜롬비아에서 오신 동료분의 이야기를 통해 콜롬비아와 에콰도르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칠레 동료분이 내일 아침 일찍 키커락 투어에 가셔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특히나 칠레 시간이 갈라파고스 보다 3시간 빨라서 저녁시간이 되면 피곤해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갈라파고스가 코스타리카 보다 한 시간 더 빨라서 쌩쌩하구나 싶었는데 오늘 알고 보니 에콰도르는 코스타리카 보다 한 시간 빠르지만 갈라파고스는 코스타리카와 같은 타임존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덜 피곤했나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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