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요?
2024.09.04. (수)
드디어! 은행 계좌가 열렸다. 너무 감사드리지만 이 정도면 말이 안 통하더라도 그냥 제가 은행 가서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줄 서서 여는 게 낫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카드까지 들고 사무실로 직접 배송 오셨다. 한 50페이지에 육박하는 서명 필요 서류들과 함께.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는데 하필 오늘 스페인어 수업을 일찍 9시에 시작하기로 한 날이라 미리 이메일로 혹시나 9시 가까이에 은행 직원이 온다면 5분 정도 늦게 접속하게 될 것 같다 양해를 구했다. (우선 이런 의도를 갖고 나-번역기-챗gpt가 합심해서 메일을 썼는데 의도대로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께서는 그럼~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생각에 너무 기대가 된다!라고 답장해주셨다. 어제 수업 마지막 즈음에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했었는데 당연히 전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bien, bien, sí, sí 하다가 내가 무슨 노래를 해주기로 했나 보다. 당황했지만 못 부른다고 스페인어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부르고 만다. 그저 마음속으로 강승윤 병장님 노래 몇 곡을 시뮬 돌려보고 일찍 도착해준 은행 직원 덕분에 제시간에 수업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노래를 들어보는 것은 내가 직접 부르는 게 아니라 화면을 공유해서 같이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함께 강승윤이 릴리릴리~하는 영상을 보고.. 한국에서 유명한 그룹이니? 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고 군복무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다녀와서 다시 노래하니? 하셔서 그럼~ 이미 2년이 지나서 올해 말이면 전역한다!라고 답변했다. 어떻게 했냐고? 어제의 어리둥절 100분의 시간을 보낸 뒤 만반의 준비를 했다. 모니터 세 개 중 하나에는 수업 화면을, 하나엔 파파고, 하나는 교재를 펼쳐서 즉각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파파고와 의논해서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어제 하루 그렇게 이겨냈다고 뭔가 어제보다는 표현들이 잘 들려서 읽어보라고 할 때 당황하지 않고 읽고 또 직접 써보라고 할 때 써보고 할 수 있었다. 아니 하루 만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거냐고~
오늘 스페인어 수업을 앞당겨 진행한 덕분에 듣고 싶었던 레쥬메 관련 세션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 토플에 관련한 일기를 쓰고 나서 그런지 세션을 진행하는 분의 말투나 억양이 너무 토플 리스닝의 그것과 같아 재미있었다. HR에서, 특히 국제기구에서 40년 이상 일하셔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레쥬메는 누가 봐줄 때마다 서로 생각하는 답이 달라서 뭔가 더 나아지는 게 맞나? 싶은 느낌이 있긴 한데 오늘은 시간순이 아닌 core skill과 experience 중점으로 작성하는 레쥬메 형식에 대해 듣고 샘플을 받아왔다. 그리고 꼭 cover letter을 함께 첨부해서 제출하라고 하는데 나만 그런지 한국인 특인지 잘 모르겠지만 커버레터는 항상 스트레스 요인이다. 그래서 phd 입시를 할 때를 빼고는 사실 회사에는 cover letter를 써서 내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받아온 템플릿을 바탕으로 한 번 작성해 봐야겠다. 1:1 컨설팅도 해주신다니까 내년 여름이 되기 전에 수정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들고 한 번 신청 해봐야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잼이 들어간 빵을 하나 사 왔다. 이 즈음되니까 그냥 저녁을 먹지 않는 것에 꽤 익숙해진 것 같지만 오늘은 빵을 먹어봤다. 오늘 이른 새벽에 친구들과 화상 통화를 한다고 일어나서 그런지 피곤해서 빨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와중에 챙겨 온 빨래 비누로 전부 손빨래함. 그리고 주말에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 친구에게도 시간 조율을 위해 연락이 왔다. 또 회사에서 춤 수업 때 처음 인사했던 동료가 어제 인스타그램에 남긴 일기 중에 출근을 했는데 재택근무를 해서인지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다 이 나라에서 혼자 일 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라고 썼던 내용이 마음에 걸렸는지 연락을 주었다. 본인과 여자친구와 함께 코스타리카를 탐방하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이게 진짜로 또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여러모로 따땃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잠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스페인어 문장 영상을 들었다 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