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스페인어로도 때리지 말라

아파요, 프로페소라

by 에스더

2024.09.03. (화)


어제 대체 선생님과의 수업에 이어 오늘은 정규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 수업하는 날이다. 중남미 다른 국가에 있는 한국인 분들도 이전에 같은 선생님께 수업을 받았다고 해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팀즈에 접속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쏟아지는 스페인어 공격. 에? 수업 자체는 영어로 진행하고 표현들을 스페인어로 익히던 어제와 달리 1시간 40분 내내 스페인어로만 수업이 진행되었다. 첫 수업인 만큼 기본 규칙을 공유해 주시며 중간에 5분 정도 쉬는 시간을 준다고 했을 땐 굳이? 싶었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꿀 같은 5분의 휴식이었다. 애초에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 주시는데, 그런데도 못 알아들으면 단어를 잘라서 천천히 반복해서 말씀해 주신다. 그.. 모르는 말을 잘라서 천천히 듣는다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 모르겠다는 말도 못 해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으면 채팅에 스페인어로 타이핑해 주신다. 그제야 번역기를 찾아 돌리고 아~! 하곤 역시 대답은 해내지 못하는.. 의 반복으로 밀도 높은 100분이 지났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건지 어리둥절하게 수업이 끝난 뒤 다행히 수업 전체를 녹화한 영상을 받아볼 수 있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수업 내용에 자동으로 스페인어 자막이 달려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말하는 부분은 제대로 자막이 달리지 않았고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 주시는 선생님의 모든 말에 정확하게 자막이 달려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뒤늦게 뜻을 찾아가며 손으로 내려 적어가 보는데 그 과정 속에 어벙한 내 모습을 두 눈 뜨고 다시 보기 힘들었다. 뒤늦게 아 이렇게 말씀하신 거구나! 이건 알아들을법했는데 또 못 알아들었네. 하며 오늘 배운 내용보다 그 외에 지금부터 녹화를 시작할게요, 여기 왼쪽 윗부분에 버튼이 있죠? 화면 공유가 되고 있나요? 와 같은 부수적인 문장들을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사를 하나하나 적어가며 복기하다 보니 처음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냥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로 국제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수업과 시험 모두 절반은 영어 절반은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한국어 보다 영어가 편한 친구들 사이에 껴서 당연히 잘 해내지 못하였다. 그 첫 시작으로,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 즈음에는 미리 중학교에 진학해서 부트캠프를 진행했는데 레벨 별로 반을 구성하여 역시나 마지막 반에 배정되었다. 영어 수업 시간에는 토플을 공부를 했는데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과제를 해갈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엉엉 울며 과제를 하다가 아버지 어머니의 서명을 받아서 첫 수업 시간에 걷어간 답지를 다시 받아서 답지에 적혀있는 스크립트 전체를 외워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첫 번째 리스닝 파트의 주제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잠순이가 잠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했다. 그리고 부트 캠프가 끝날 즈음에는 반에서 2등으로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즈음에 받았던 토플 점수랑 이번에 한국에서 떠나기 직전에 한 번 봤던 토플 점수랑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아마 그즈음에 나는 멈춰있나 보다. 아무튼 스페인어? 해보지 뭐!


다른 학생들이 왜 오전엔 수업 듣고 오후엔 과제하고 퇴근하는 어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인지 오늘 수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먼저 과제를 하고 오늘 수업을 몇 번 반복해 듣고 나니 퇴근할 시간이었다. 집에 가서는 처음으로 스페인어로 일기를 작성해 봤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인스타그램에 매주 한 편씩 일기를 올리고 있는데 코스타리카에 도착한 뒤로 올리는 첫 번째 일기였다. 사실 그 사이 은근히 몇 명의 코스타리카 친구들이 인스타에 추가되어 그 앞에 내 스페인어를 올리는 것에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파파고와 챗gpt의 도움을 받아 업로드해보았다! 그리고 몇 번을 읽어봤지만 나 스스로도 내가 의도한 바로 잘 작성한 것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한 52편의 일기를 올린 뒤에는 이때 이 명사의 성별을 잘 못썼었네! 하고 스스로 첨삭할 수준에 도달한 시기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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