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7 개미랑 싸우고, 인터넷이랑 싸우고

대신 끼니를 챙기고, 재택을 쟁취하고

by 에스더

24.09.09. (월)


토요일에 이사 왔지만 새 방에서 온전히 보내는 첫 working day다. 그리고 용감하게 재택을 해버렸다! 사후 처리 같지만 슈퍼바이저에게 지난 주말에 이사 잘 왔고 사무실과 멀어져서 근무 규정대로 하이브리드 근무하고자 합니다 근데 혹시 지난주에 매일 출근했고, 출근하려면 택시 타야 하는데 이번주에 안 가면 안 되나요? 시전 했더니(사실 이렇게 말 못 하고 n% 출근의 기준이 주 단위인지, 월 단위인지 문의드립니다~함) 알고 보니 이번 달 내내 출장으로 사무실에 출근 안 하실 예정인 supervisor..! 멋지게 그럼 이번 주는 사무실 한 번만 와~하셨다. 편해진 마음으로 어제 받아온 나물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려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코스타리카에 와서 처음으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사 먹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제부터 인터넷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집에서 듣는 스페인어 수업이라니 좋군~(사방이 네이티브인 사무실에서 que.. que.. 거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했다가 안 그래도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잔뜩 쫄아서 듣는데 인터넷까지 버벅거리니까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실제로 수업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다음날까지도 머리가 아파 약까지 챙겨 먹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음 주부터 출근 예정인 대학교에 혹시 이번주에 미리 출근해서 스페인어 수업만 들어도 괜찮을지 문의를 남겨두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혹시 대학에서 안된다고 하거나 거기도 인터넷이 잘 안 되면 픽업해서 본인 집에서 수업 듣게 하고 다시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아니 우리 집에서 너희 집 왕복 한 시간이잖아! 너.. 한국 꼭 와라 이 자식! 구절판 해줄 거다(엄마가)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잠시 낮잠을 잤다가 일어나니 방에 좋은 일과 좋지 못한 일이 하나씩 생겨있었다. 좋은 일은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는데 어제 아침부터 옥상에서 하던 공사가 제대로 되었는지 물이 더 이상 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고, 좋지 못한 일은 아까 계란프라이를 한 팬과 그릇 등에 개미가 구백만 마리 모여있었다는 것이다. 또다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문제의 가방을 들고 루프탑 밖으로 나왔다. 엄마!!!!!!!!!! 할 수 없으니 눈을 감고-보긴 봐야 하니 살짝 실눈을 뜨고 손에 휴지를 칭칭 감아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개미를 퇴치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모여있나 했는데 설거지하고 수세미에 기름인지 소스인지 조금 묻어있었나 보다.


진짜 싫지만 또 그렇게 개미랑 한참을 싸우고 모든 물건을 다시 설거지하여 닦고 저녁을 위해 요리하기 시작했다. 토마계란덮밥 완성! 사실 부엌도 공용공간이고 먹을 게 많으니 개미 친구들을 안 볼 수는 없어서 쉽지 않지만 우리 층 부엌 공사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고 하니 한 2주 정도는 견뎌야 할 일이다. 대신 요리하면서 오고 가는 같은 빌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내일모레 근처에 놀러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층에 나 외에 유일하게 살고 있다는 영국인 친구도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벌써 코스타리카에 15년째, 이 건물에만 5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한테 여기 인터넷이 원래 이런 지 투덜거렸는데 요 며칠이 좀 심하게 안된다고는 했다. 와중에 대학에서 그럼! 와서 수업 들어~라고 흔쾌히 답을 줘서(한편으로는 그냥 가서 잠시 앉아있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계약도 아직 안된 기관에 사적인 목적(?)으로 출근해 앉아있는 게 맞나 싶다) 걱정을 조금 덜었다. 꼭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하루종일 집에 있다 보니 좀 무기력하다. 오고 가는 길에 좀 귀찮아도 규칙적으로 어딜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다. 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또 이곳에 적응되고 나면 재택 시켜줘! 재택 시켜줘! 하겠지. 아니 그냥 따릉이 타고 어디 노원역 근처 스타벅스 아무 데나 들어가서 와이파이 팡팡 연결하고 바닐라크림콜드브루 마시면서 대충 수업 듣고 싶다고요.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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