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8. 책에서 튀어나온 엠파나다(empanada)

티카가 해주는 코스타리카 전통 음식

by 에스더

2024.09.10. (화)


눈을 뜨고 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론~그 사이사이 주어지는 재택근무는 더 달콤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 환경에서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덜 든다. 나물은 빨리 먹어야 한다고 계속 걱정하는 아빠를 위해 또 한 번 비빔밥을 만들어먹고 연구소로 향했다. 처음 하우스 인스펙션 왔을 때 학교까지 걸어 다닐 수 있을지 걸어본 것 외에는 처음 가보는 길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역시나! 무슨 기찻길을 건너야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 외에는 이제 도로 건너기 스탯이 꽤 쌓여 큰 어려움 없이 건물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난관은 도로 건너기가 아니라 리셉션 사람과 스페인어로 소통하기였다. 아직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나는 계속 담당자 이름만 반복하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더니 교수님에게 직접 전화해 자초지종을 듣고 문을 열어줬다.


들어왔더니 또 다른 담당자가 사무실에 있었다? 여기 계셨으면 저 좀 구해주시지.. 하던 순간 갑자기 볼 박치기 하고 쪽쪽하기? (찾아보니 베소라고 부른다)를 시전 하셔서 아니 어제 구해줘 메시지는 답을 안 주시더니 이렇게까지 친해져 버렸다고? 약간 당황했지만 지금까지의 이 베소 경험을 되돌아 생각해 보면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건가 보다!(전혀 안 정확함) 그리고 여기에서 수업 들어! 하고 본인 사무실을 내줘서 아니야~ 나 수업 들으면서 대화도 해야 하는데 그냥 저기 열린 공간 가서 들을게! 하고 독서실 같은 공간으로 옮겼다.


노트북을 펼치고 앉으니 사무실 전체 대상 미팅을 막 시작하고 있어 접속하였더니 대장님이 스페인어로 한참 무언가 말씀하고 계셨다.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나왔으면 됐는데.. 스페인어 수업을 들을 때마다 선생님이 녹화해 주면 자동으로 자막이 달리던 것이 생각나서 stt기능을 켜서 오 좋아! 하고 번역기 돌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에게 내가 녹화를 시작하였다고 알람이 가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갑자기 스크린을 쳐다봤다.) 아니 저는 녹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고 그냥 자막 켜서 대장님이 무슨 말씀하고 계신 건지 알고 싶었던 건데요.. 또 이걸 막상 번역기로 돌려보니 무슨 대통령 이야기를 하고 계시고 배부된 자료도 authorizaiton이 있어야 접근 가능한 자료라 갑자기 이거 이슈다 회의에서 나왔지만 녹화 기능은 꺼지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고.. 녹화를 멈춰? 그럼 또 알람이 가는데.. 그저 들락거리는 한국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다시 찾아온 스페인어 수업 시간. 갑자기 아무도 없던 방에 다른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내가 곧 화상으로 스페인어 수업을 들을 텐데 괜찮을까?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그럼 당연하지 하시던 이유가 있었다. 수업 중에 훨씬 큰 목소리로 미팅을 시작하셨던 것.. 선생님도 수업하다가 소리를 듣고 오.. 코스타리카분 안녕하세요! 하실정도였다. 지난주 금요일에 프로페소라~ 덕분에 일주일간 많이 발전했다 감사하다! 하는 메일을 괜히 썼다 싶을 정도로 퇴보한 스페인어 실력으로 월, 화 수업을 마치고 수, 목에는 칠레로 출장을 가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틀간은 선생님 대신 대체 선생님에게 나를 맡기고 떠나 주셔서 살짝 감사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침에 비빔밥 얼마나 많이 먹고 왔는데 또 배가 고파서 토마계란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리는데 어제 그 친구가 전 같은 것을 계속 만들고 있길래 물어보니 'chorreadas'라고 했다. 하나 손에 쥐어주고 옆에 같이 먹으라고 마요네즈 같은 것을 짜줬는데 natilla라고 했다.(처음에는 팬케이크에 발라 먹으라고 누텔라를 꺼내준다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위한 거라고 엠파나다를 만들어줬다. 나 이거 뭔지 알아 오늘 수업 시간에 배웠거든! 그냥 튀김 반죽 같은 것에 치즈를 넣어서 만들어준 건데 금방 만들어서 건네주어서인지 맘이 따땃해져서인지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좋은 치즈를 공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이렇게 그냥 반죽에 치즈 넣은 건데 맛있을 일이라고?


따뜻한 마음들 덕에 토마계란밥을 먹고 나서도 초레아다스(con 나틸라)도 먹고 엠파나다도 먹고 근데 나는 사실 또 도넛이 먹고 싶었다. 왜냐면.. 아까 오전에 실수로 녹화 버튼 누르면서 봤는데 오프라인 참석한 사람들은 도넛을 먹고 있었거든.. 그래서 집 옆에 있는 슈퍼에 처음 방문해 보았다. 지금까지 마트에서 사 먹은 빵 중에 맛없는 게 없었다고! 그렇지만 이곳은 왜인지 빵을 팔지 않았고 대신 쿠키를 사 와서 엄청나게 먹었다. 이제 사과, 바나나 폭식은 없는 거다! 왜냐고? 내일 relocation fee 들어온다고 인보이스를 받았거든 후후 그렇지만 쿠키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초반에 살이 엄청나게 빠졌다가 오레오 파티팩을 집에 들여오기 시작한 뒤로-그리고 액상과당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던 시절, 다양한 종류의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도 한몫했지만 살이 찐 지도 모르는 틈을 타 데굴데굴해져서 한국에 들어갔더니 아빠가 오? 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과자도 엄청나게 먹었지만 달달이 쿠키는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개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방 안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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