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큼은 덜 든든해지기 위해 만 오천보를 걸었다
2024.09.22 (일)
한국 시간 일요일이 넘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오늘은 눈이 일찍 떠진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여전히 15시간의 시차가 빠르게 암산되지 않지만 한국 시간 자정에 맞춰 무언가 제출해야 할 때 이곳 시간 아침 9시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안다. 먼저 어제 작성하다 잠든 이번주 회고록을 제출했다. 열 번째 회고록이다. 처음에는 회고 오티를 듣고 다양한 회고 방식을 시도해 보다가 이곳에 오고 난 후로는 일기를 매일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회고록도 자연스럽게 메인이벤트 다섯 개 즈음을 꼽아 작성해 제출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시 KPT 프레임으로 작성해 보았는데 이 과정 속에 이번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이게 일기장이 아니라 회고록인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른 분들의 회고를 읽던 중에 이전에 이런 게 있구나 했던 글또 모임 지원이 오늘까지인데 거기다 또 마지막 기수 모집이라길래 뜬금없이 생긴 아쉬운 마음에 라스트미닛에 지원해 보았다. 온라인으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보다 더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지원! 그렇게 아침시간을 잘 썼다고 뿌듯해하였는데 알고 보니 전부터 이건 꼭 내야지 했던 공모전이 오늘까지였다. 지금 회고고 지원이고 그런 거 할 때가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하나 놓쳐 내년에 제출할 공모전 하나 추가다.
오늘은 교회까지 한 번 걸어가 보려고 한다. 요즘 규칙적으로 연구소 <-> 집 밖에 하지 않으니 하루 걸음수가 제한적인 데다가 따로 운동도 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던 중 여유로운 시간과 맑은 하늘을 보고 급하게 결심했다. 구글맵에 찍어보니 한 7km 나오길래 10km도 쉬지 않고 뛰는데 7km 걸어가는 것 즈음이야! 하고 출발했다. 걷다 보니 연구소를 거쳐 가는 길이었는데 그 부근의 캠퍼스 출구가 막혀있었다. 캠퍼스 안에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러닝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이 지나가면서 buscar 어쩌고 slida? 하길래 나같이 출구를 찾고 계신 줄 알고 여기 출구 없어!라고 답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누가 봐도 거기서 백 년째 달리고 계신 분인데 누가 봐도 어제 도착한 나한테 출구를 물어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캠퍼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걸 보고 이쪽으로 괜히 달려서 출구 찾냐~ 물어보시던 거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이케가서 저케가봐! 하시고 그라시아스~하니까 쾌활하게 또 달리셨는데 알고 보니 내가 가야 하는 출구 방향으로 가서 뱅글뱅글 돌고 계시다가 내가 잘 빠져나가니까 안녕! 하고 떠나셨다. 따숩잖아?
뛸 땐 멀어도 걷기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던 7km였는데 마침 오늘 이전 직장에서 지원해주던 유튭 프리미엄이 끝나서 에어팟 없이 걸어서인지, 혹여 길이 끊길까 잔뜩 긴장하고 걸어서인지 쉽지만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으로 추억의 마파두부(!)를 먹고 친구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오신 arroz con leche를 먹었다(사실 여기에 크리스피크림의 츄러스도 먹었다). 다음 주에 준비할 음식에 대해 한창 이야기하다가 친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집에 가서 놀까 하다가 급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서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방에서 뎅굴거리며 유튜브도 보다 짧게 자다 하니 금방 저녁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딴 길: 굿파트너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코국 넷플릭스로 넘어오면서 뜨지 않아 아쉬워-나는 솔로도!-유튭 클립이라도 보고 있었는데 차은경의 대사가 마음에 닿았다. "정답은 없어. 다 선택이야. 우리가 잘해야 하는 거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노력이야. 그리고 그 노력을 다했다면 후회하지 않고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돼. 선택과 책임이 반복되는 거 그게 인생 아닐까?" 결혼과 이혼, 비혼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잘 다니던 회사와 한국을 떠나오며 어떤 선택이 옳은가 그 기준에 대한 고민에 마음이 복잡하던 날들과 또 갑자기 월급 받는 어학원 학생이 된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마음속에 약간 반짝했다!)
보내주신 주소를 받아보았더니 엊그제 친구와 산책했던 바로 옆동네길래 어차피 또 저녁도 많이 먹게 될 것 같아 산책 겸 걸어갔다가 도착해서 무서운지도 모르고 어딜 걸어왔냐고 약간 (애정의) 잔소리를 들었다. 쭈뼛쭈뼛 뭐 도와드릴 것이 없을지 돌아보다 테이블 세팅을 도왔다. 갈비찜에 파전에 탕수육, 된장국, 볶음면, 볶음밥, 케이크까지 추석이 지난주 아니었나요? 아니면 혹시 제 생일인가요?(다른 분 생일이었다. 그렇지만 속으로 내가 더 행복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를 듣다가(비슷한 시기에 이민 와서 어려서부터 모두 가족같이 지내왔다고 하셨다.) 설거지까지 도와드리고 마치 명절에 본가에 다녀온 사람처럼 양손 무겁게 귀가했다. 점심에 교회에서 김치를 종류 별로 받고 마파두부까지 받았는데! 전용 냉장고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절반 잘라 은인에게 나눠주고 오늘 일주일치 설탕 다 먹어놓고서는 또 케이크를 쪼끔씩 떼어먹다 정신 차리고 잘 준비를 했다.